지난주 외신은 이집트 사막에 묻혀 있는 피라미드 17개를 미국 연구진이 땅을 파 보지도 않고 찾아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적외선 사진을 판독해서 알아냈다. 적외선 사진에서 온도가 높은 곳은 밝게, 낮은 곳은 어둡게 나타난다. 낮 동안 달궈진 사막에 밤이 오면 돌처럼 단단한 물질은 모래보다 밀도가 높아 천천히 식기 때문에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온도 차이를 읽어 피라미드를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지하에 유적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물리탐사를 유적탐사라고 한다. 주로 지하자원 개발에 쓰던 물리탐사를 고고학에 응용한 것은 1940년대 후반 영국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장비를 구입하면서 도입했다. 본격 활용은 2000년대 들어서다. 79년 충남 공주시 옹진동고분과 88년 공주시 송산리 고분 탐사에 연구 목적으로 해 본 적은 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땅속을 X레이 찍듯 들여다보는 유적탐사는 유적 발굴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정확성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2002년 택지 개발을 위한 지표조사 중 발견된 대전 상대동 유적의 경우 3년간 시굴과 발굴에만 31억원이 들었고 결국 원형보존 조치가 내려져 사업시행기관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유적탐사를 했더라면 손해를 줄일 수 있었을 터다.
국내 유적 발굴은 연간 1,000건이 넘지만 유적탐사 전담 인력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의 학예연구사 2명뿐이다. 예산과 인력이 터무니없이 열악한 가운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150여건의 크고 작은 물리탐사를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오현덕 학예연구사는 “유적 발굴 조사에서 물리탐사를 필수 사항으로 하고 전문가 양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유적탐사가 어린이를 위한 방송 프로그램에 편성돼 있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하다. 그리스는 발굴을 대신하는 대안적 조사나 보충적 방법으로서 유적탐사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2002년 제정된 이 법은 프랑스 독일 영국에 영향을 끼쳤다.
이번 피라미드 탐사에 쓰인 인공위성 적외선 촬영은 유적탐사의 첨단 기술이다. 한국에서는 레이더탐사가 가장 많고 자력탐사와 전기탐사도 한다.
레이더탐사는 지표 투과 레이더(GPRㆍGround Penetrating Radar)로 X레이 찍듯 땅속을 스캔하는 기법이다. 물체에 부딪혔을 때 반사되는 파장의 세기를 분석해 물체의 종류와 위치를 알아낸다. 특정 지점의 반사파 파장이 주변부보다 세졌다면 거기에 딱딱한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고엽제 매립 논란이 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캠프 캐럴에서 주한미군이 고엽제 드럼통을 찾아내는 데 쓰려는 방법도 레이더 탐사다.
레이더로 탐사한 대표적 유적이 신라의 왕궁인 경주 월성이다. 훼손을 염려해 발굴하지 않고 있는 곳인데 2009년 11만2,000㎢에 이르는 전체 면적을 GPR 탐사해 지하 유구의 건물 위치, 크기와 형태, 칸 수, 건물 기둥을 받치는 적심의 초석 개수까지 파악하는 획기적 성과를 거뒀다.
전기탐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요즘 한창 연구 중인 최신 기술이다. 물질마다 전도율이 다른 성질을 이용, 땅속으로 전류를 흘려보내 지하 물체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레이더 파장이 닿지 않는 깊은 땅속을 3차원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어 대형 고분 탐사에 유용하다. 예컨대 석실 고분의 딱딱한 석실 부분은 전기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전기탐사 사진을 판독하면 석실의 존재 유무와 크기, 위치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전남 나주시 복암리 유적의 대형 고분에서 시험 삼아 해 봤더니 1997년 실제 발굴 결과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성과가 좋아서 앞으로 많이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력탐사는 물질마다 자기장의 세기가 다른 성질을 이용한 기법이다. 99%가 모래인 사막처럼 매질이 균일한 곳에서 효과적이다. 한국은 산악 지형인 데다 경작지가 많아 유기물 등 이물질이 많은 탓에 자력탐사로는 미세한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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