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늦깎이 화가 된 1966년 경북 美 김성애씨/ "미스코리아 나간 이유요? 그림 그리고 싶어서였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늦깎이 화가 된 1966년 경북 美 김성애씨/ "미스코리아 나간 이유요? 그림 그리고 싶어서였죠"

입력
2011.05.29 17:33
0 0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 미대를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굶어 죽는다'며 완강하게 반대하셨어요. 당시 저는 두 분 몰래 친구들과 허름한 방 하나를 얻어 공동작업실로 쓸 만큼 미술에 미쳐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작업실에 가느라 귀가가 늦곤 하던 제 뒤를 밟은 부모님께 들켜버렸죠. 눈앞에서 이젤과 붓이 부서지는 걸 봤습니다. 그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꿈, 수십 년을 굽이굽이 돌아 지난 2000년에야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화가 김성애(64)씨는 올해로 데뷔 11년차다. 지난 4월 한국현대미술상, 5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최근 잇따른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는 남다른 이력이 하나 더 있다. 1966년 '미스코리아 경북 미' 출신이라는 것. 중학교 때부터 미대 진학을 꿈꿨던 그가 대학 전공으로 가정과를 택한 후 곧바로 미인대회에 나갔던 것은, 엉뚱하게도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면 자동으로 학교에서 제적 처리가 됐습니다. 재수해서 다시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죠."

몰래 대회 출전 원서를 냈지만 수상 소식이 신문에 실리면서 가족에게도 알려졌다. 딸이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던 그의 부모는 이번에도 반대편에 섰다. 결국 서울에서 열린 본선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김씨는 미인대회 출신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던 한 은행에 취직한 뒤 부모의 뜻대로 결혼, 여느 평범한 주부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살림과 육아에 치이는 가운데서도 틈나는 대로 스케치북과 붓을 꺼내 들었다. 김씨는 "지금은 든든한 조력자인 남편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래서 일부러 남편 앞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는 '그림을 못 그리게 하니 내 얼굴에 색칠을 해서라도 미술 공부를 할 것'이라며 시위한 적도 있다"고 웃었다.

1990년 무역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김씨는 가사 외에 남는 시간을 미술 공부에 투자했다. "노스 릿지, 피어스 칼리지 등 그 지역 대학이 개설한 미술강좌에서 1주일에 사흘씩 유화를 배웠죠. 어릴 적 꿈이 되살아 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 남편이 사업을 정리하면서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김씨는 그간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접어든다. 53세, 이미 중년의 나이였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맛보는 자유는 그를 인사동 화랑가로 이끌었다. "당시 만난 분들이 습작에 머물던 제 작품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전시회에 초대해 주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죠."

2006년 첫 개인전 이후 여섯 번의 전시회를 열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올해 들어서는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 등 해외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그간 구상에서 추상으로 화풍의 변화도 꾀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수상작인 '희망 I'이다.

"제가 다른 길을 돌아서 꿈을 찾아왔듯, 이 그림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희망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제 나이면 모든 것을 접는 시기잖아요. 뒤늦게 데뷔한 만큼 그간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할 겁니다." 김씨는 6월15일 인사동 바이올렛화랑에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 여는 '동행'전에서 그간 닦아온 비구상화 솜씨를 선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