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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후 재기한 안성국밥 김종안씨…7년째 5000원 고수/ "이웃 사랑 덕에 국밥값 못 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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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후 재기한 안성국밥 김종안씨…7년째 5000원 고수/ "이웃 사랑 덕에 국밥값 못 올리죠"

입력
2011.05.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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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그스름한 국물에 어우러진 먹음직한 건더기가 뚝배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수저로 휘휘 저어 보니 양지머리와 머리고기 등이 수북하게 걸린다. 가게 안에는 메뉴판도 가격표시도 따로 없지만 손님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씩을 깨끗이 비운 후 당연한 듯 5,000원을 냈다. 이달 20일 오후에 찾은 경기 안성시 도기동의 '안성 전통국밥'의 풍경이다.

국밥집 주인 김종안(59) 씨는 주방에서 커다란 가마솥 두 개와 씨름하고 있었다. 다른 집보다 싼 가격에 대한 대답은 단순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하는 장사라 미안해서 가격을 올릴 수가 없어요."

사연은 이랬다. 안성은 조선시대 개성 수원과 함께 3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안성우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쇠전거리'라 불렀고, 주인 김 씨의 할머니는 1930년대 초반부터 쇠전거리에서 가마솥을 걸어 놓고 국밥을 팔았다. 2대째인 김 씨의 어머니는 '안성에서 가장 편한 집'이란 의미의 '안일옥(安一屋)'이란 간판을 달고 국밥집을 크게 키웠다. 원래 3대째는 그의 형 몫이었지만 1980년 형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 3남 6녀 중 둘째 아들인 김 씨가 가업을 이어야 했다. 경기 성남시의 매형네 병원에서 사무장으로 일했던 김 씨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안성으로 돌아와 가마솥에 불을 땠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을 배우려니 고생도 심했지만 맛으로 소문난 안일옥은 승승장구했다. 김 씨는 평택시 등 인근 도시에 직영점 5개를 낼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친척의 빚보증을 서준 게 화근이었다. 동생 중 한 명이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안일옥만 겨우 살리고 자신은 빈털터리가 됐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치아가 무더기로 빠지기도 했다.

안성을 떠나려던 그를 잡은 건 한 고향 후배였다. 다시 국밥을 끓여 달라며 현재 국밥집 땅을 무상으로 빌려 줬다. 힘을 얻은 김 씨는 고물상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자재들을 모았다. 인심 좋은 한 이웃은 유행이 지나 폐기하려던 벽돌 한 트럭을 그냥 내 주기도 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하나 둘 갖다 붙여 건물 형태를 만들고 7년 전 다시 가마솥을 걸었다. 김 씨는 "이 가게를 연 날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치솟는 물가에 개업 때 정한 가격 5,000원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김 씨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볼 생각이다. "할머니도 그랬고 어머니도 그랬다. 없는 사람도 배불리 먹고 가는 게 우리 국밥의 전통이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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