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가 돌아왔다. 3년 전 침샘암이 찾아와 2009년10월에는 35년 동안 이어오던 연재소설 까지 중단한 그가 손톱과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이겨내며 장편소설 하나를 썼다. 컴퓨터를 멀리하고 원고지에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 익숙하지 않으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지만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의 독특한 흘림체 글씨. 책갈피에 받는 자와 주는 자의 이름만으로 관심과 사랑, 고마움과 안부를 전하는 친필 서명도 여전하다. 그리고 (여백 펴냄)는 병마 속에서도 운명적으로 그가'최인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 한동안 그를 만날 수 없었다.'가족'을 빼고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병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이 그에게는 고통과 번잡이었고, 심지어 친구나 가까운 지인에게까지도 병마와 싸우며 지치고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절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그의 근황과 사진 속의 모습을 보면 그럴 만하다. 더구나 아프기 몇 해 전부터 이미"이제는 장식물처럼 느껴지는 존재가 아닌 소설가, 소설로만 살겠다"는 선언한 그가 아닌가. 그래서 그의 건강과 소설이 더 기다려졌고, 소설 가 반갑다.
■ 돌아온 것은 그의 소설만이 아니다. 시간에서도 돌아오고, 체질과 사유의 뿌리도 돌려놓았다. 30년 이상 세월이 이끄는 순리와 타인(신문)의 권유로 역사와 종교로의 장거리 주행을 끝내고 처음의 자리인 현대도시 거리를 숨가쁘게 달리는 단거리 선수로. 그 낯익은 얼굴과 도시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40년 전 에서 보았던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아무리 '원래'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마라톤에 매달리다 어느 날 아침 다시 단거리 선수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그의 고백처럼 암이 준 새로운 출발과 선물인지 모른다.
■ 인간은 죽음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하늘만이 안다. 그런데 이 '암'이란 놈이 나타나서는 건방지게 천리(天理)를 거스르며 인간에게 죽음의 시간을 예고하려 한다. 맞든 안 맞든 그 예고가 주는 절망과 공포, 깨달음과 혼란은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모를 것이다. 그 '놈'은 소설가 최인호에게는 '제3기 문학'의 출발인 소설 와 신과 자신조차 혼란스러운 주인공 K를 주었다. 처음에는 숨 차고, 다리도 후들거리겠지만 그가 '청년 최인호'로 돌아와 '깊고 푸른'도시의 구석구석을 더욱 힘차게 누비기를 기원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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