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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현대사 연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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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현대사 연구 1

입력
2011.05.2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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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1948~91)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호박꽃보다야 장미가 아름답고요

감꽃보다야 백목련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어여쁜 말들을 고르고 나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했읍니다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지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이란 죄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다보니

남은 건 다름아닌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었읍니다

썩기로 작정한 뜻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말에도

몹쓸 괴질이 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일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서른 다섯 해가 걸렸다니 원)

● 사기꾼들의 언행은 그럴싸하다. 외상으로 물건을 주는 친척 집에서 일을 거든 시절이 있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 가죽 지갑에서 꺼낸 상아 도장을 계약서에 찍고, 그 짧은 시간에도 비서로부터 전화를 몇 통씩이나 받으며, 고액의 돈을 들먹거리는 이들은 대부분 사기꾼이었다.

정의사회구현(새싹비빔밥처럼 그 속내가 잔인한), 자연보호(자연이 인간의 보호 대상이라는 교만함), 친환경녹색성장(직선으로 뽑아 4대강의 키를 늘리는), 뉴타운 건설(‘새’자가 들어간 말에는 사기성이 농후하다), 글로벌, 신자유주의, 주요20개국(G20), 위대한 탄생(경쟁을 부추기고 마치 이 사회의 모든 분야가 무한 기회로 열린 것 같은 환상을 무의식에 주입하는) 등등, 내가 성인이 되어 만난 그럴듯한 말들은 얼마나 많은가.

서른다섯 해나 걸려서가 아니라 서른다섯 해 만에, 적들은 꽃 같은 말로 위장하고 우리들을 현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니. 꽃 같은 달달한 말 던져 버리고 쓴 그의 시가 빛날 수밖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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