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3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1968년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대량 살포된 고엽제(枯葉劑)의 진실은 31년이 지난 1999년에야 세상에 알려졌고, 1978년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묻힌(묻혔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고엽제 250드럼의 진실은 33년 만인 2011년 한 퇴역군인의 양심에 의해 베일을 벗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알았다. 다우케미컬이나 몬산토 같은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들은 1940년대 후반 이 물질을 개발할 때 한 차례 사고를 겪은 뒤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치명적인 유해성을 알게 됐고, 그것을 전쟁터에 동원한 미국 정부와 군 당국 역시 그 무렵, 또는 적어도 미국 정부 스스로 사용을 금지시킨 1970년에는 위험성을 확실히 인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들은 스스로 양심에 따라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될 뿐이다.
한국 정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미 고위당국자간 합의에 의해 이뤄진 DMZ 고엽제 살포의 진실을 한국 정부는 1999년 미국의 비밀문건이 해제될 때까지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 정부가 피해자들의 후유장애에 대한 보상 규정을 만든 것도 그 다음 해인 2000년이다.
한미 정부가 진실을 은폐한 가운데 수많은 군인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음의 가루'를 밀가루처럼 철모에 받아서 손으로 뿌리고, 바짓가랑이가 흥건하게 젖도록 약물을 살포했다(한국일보 5월25일자 박만금씨 증언). 그리고 그들은 이후 영문도 모르고 온갖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는 맹독성 제초제인 2,4-D와 2,4,5-T를 혼합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괴물'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제조사와 당국의 정보은폐와 잘못된 사용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 된 것이다.
제조사들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과학을 총동원하지만, 정작 그로 인한 피해와 보상에 직면해서는 과학의 이름으로 얼굴을 바꾼다. 괴물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미 약품연구소는 2002년 보고서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자녀들이 당시 미군에 의해 살포된 고엽제 때문에 암과 백혈병 등 불치병에 걸린다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법원도 이들의 '과학적' 주장을 근거로 삼아 판단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는 2002년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 1만7,000여명이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이 원고들의 질병을 일으켰다는 일반적 인과관계와 원고 개개인이 실제로 질병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고엽제에 노출됐다는 개별적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고엽제를 만든 몬산토는 지금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생산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GMO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으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논리로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그것의 유해성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지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이번에도 30년쯤 뒤에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지.
김상철 정책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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