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 사건이 단순 금융 비리를 넘어 결국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사업 확장 또는 부실화 저지 과정에서 전ㆍ현 정권 인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검찰에 잇따라 포착되면서 수사망도 대폭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이번 수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지금으로선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저축은행과 금융당국의 유착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검찰 수사가 정치권 로비 의혹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는 금융브로커 윤여성(56)씨의 '입'이었다. 부산저축은행의 대외 로비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윤씨는 지난 3월 중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다가 지난 17일 체포돼 구속됐는데, 그 동안 굳게 다물었던 입을 최근 열기 시작한 것이다.
윤씨는 부산저축은행그룹 내에서 '회장님'으로 통할 만큼 중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저축은행이나 계열 은행의 주요 주주 명단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차명 주주'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씨를 본 적이 있다는 한 변호사는 "자신을 '부산저축은행 주주'라고 소개했고, 실제로 회사 내부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윤씨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각종 로비 시도에 대해 낱낱이 진술할 경우, 검찰 수사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 중 가장 '대어급'인 은진수(50)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금품수수 의혹 역시 발원지는 윤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씨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한 전력 등 때문에 이 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분류된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방안 논의 등을 위해 은씨가 윤씨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보했으며, 금감원 출신이나 법조계 인사와 대책회의까지 여는 등 깊숙이 개입한 구체적 정황도 이미 포착했다.
문제는 은씨가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의 출발점인지 종착역인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은씨가 부산저축은행 구명을 위해 다른 여권 인사들을 접촉했거나 부산저축은행 측에 소개해 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지난해 6월 부산저축은행이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으로부터 각각 500억원씩을 투자받게 된 경위를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 수사 초기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야권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건은 이날 구속된 부산저축은행의 2대 주주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 검찰은 김양(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과 고교 동기인 박 회장이 호남지역의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윤씨와 함께 대외 로비를 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적도 있는 박 회장이 DJ정부 및 참여정부 인사들과도 어느 정도 교분을 쌓았던 만큼, 박 회장을 경유해 전 정권 인사들의 연루 정황을 밝혀내겠다는 게 검찰의 복안이다. 일각에서는 윤씨는 행동대장에 불과할 뿐이며, 부산저축은행의 대외 로비를 담당한 진짜 컨트롤 타워는 박 회장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신삼길(구속기소)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도 또 하나의 뇌관으로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금감원 부원장보 김장호씨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최근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다른 정ㆍ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 시도도 이미 실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화저축은행 수사가 아직까지는 부산저축은행에 비해서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코 그못지않은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 될 수도 있다고 법조계와 사정당국은 보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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