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琴兒) 피천득이 수필 '5월'에서 말한 신록의 달이 지나가고 원숙한 녹음의 6월이 온다. 확실히 봄의 마지막과 함께 다가올 여름을 알리는 5월은 막 푸릇푸릇해지는 여린 잎과 같은 계절이다. 짙은 화려함은 없지만, 그래서 기대로 더 가슴이 벅차다.
문화예술교육의 잔치마당
작년 5월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예술교육대회가 한국에서 열려 '예술은 사회성을, 교육은 창의성을' 이라는 슬로건 아래 각국 문화예술교육 담당 장ㆍ차관급 인사와 학계, 비정부기구 대표 등 109개국 2,000여 명이 서울에 모였다. 문화예술과 교육에 대한 담론이 쏟아지는 가운데 4D 사물놀이 등 첨단기술과 전통이 만난 우리 예술을 보여주고, 193개 유네스코 회원국의 문화예술 교육지침으로 활용할 '서울 어젠다'를 발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국제적 문화예술교육 공론의 장이 올해로 2회째를 맞이했다. 어린 잎, 아니 빈들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 새삼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토양을 들여다보게 된다. 문화예술교육은 미래의 예술가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즐기기보다 배우고 익혀서 남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때로는 입시나 과시용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글이든 음악이든 몸짓이든, 형식과 비형식으로 감성을 체현하는 창조 활동이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 교과서'로 타인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공부하는 현실은 낯 설기만 하다.
하지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척박한 땅에서도 꽃이 피고 새 잎이 자란다. 도시의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피어난 새싹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 동안 여러 곳에 뿌려온 문화예술의 씨앗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것을 보아왔다. 섬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시로 인생을 노래하고, 시골마을 초등학생들이 영화에 어린 삶을 담는다. 군부대에서 아카펠라 선율이 흘러나오고, 교도소에서 예술이 빚어진다. 분명 저마다 알아서 배운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지만, 개인의 삶에 녹아있어 세련미는 부족해도 생활미가 묻어난다. 한번 개인에게 체화된 예술은 창조의 욕구를 자극해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스스로 발전해 가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녹음이 짙어지는 5월 마지막 주, 우리는 또 한번 문화예술교육의 짙은 여름 녹음을 준비했다. 지난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2011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주간'의 푸른 잎을 달게 된 것이다. 1주일 동안 전국 16개 시·도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세미나와 워크숍, 문화난장, 거리축제가 열렸다. 1,000여 명이 만들어 내는 화음과 추억의 기타 선율, 우리 가락 등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쉼 없이 울려 퍼졌다. 학생과 어린이뿐만 아니라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도 함께 참여한 문화예술교육의 잔치가 한바탕 열린 것이다.
낮고 깊은 곳까지 닿기를
이것이 끝이 아니다. 10월에는 문화예술교육의 축제를 세계인들이 다 같이 펼치도록 권장하는 '서울 어젠다'가 유네스코 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매년 5월 마지막 주가 '세계 문화예술 교육주간'으로 선포된다. 이 기간에는 세계 곳곳에서 피어난 크고 작은 문화 예술의 잎새들이 서로 조화로운 반향을 만들며 우거질 것이다.
시인 이해인 수녀는 '5월의 시'에서 5월은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달이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더해 5월은 조용한 곳에 심어진 문화예술교육의 씨앗이 하나하나 사람들의 삶에 싹을 틔우는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낸 5월, 우리의 문화예술도 더 낮고 깊은 곳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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