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들 앞에 펼쳐질 향후 30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현재 많은 베이비부머의 재무상태가 열악하고, 이른바 '하우스 푸어'(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 상태에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과 달리 퇴직연금과 공적 연금제도로부터 충분한 혜택을 받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퇴 후 삶에 대비해 스스로 해결할 과제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각종 조사를 보면 베이비부머의 가계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에 편중돼 있다. 부동산 자산이 전체 자산에서 70~8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부동산을 제외하면 은퇴소득을 확보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이 주택자산을 활용해 부족한 은퇴소득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역 시절에는 무리하게 담보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 평수를 넓혀 왔다. 향후 부동산 시장을 낙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 교육비를 충당하느라 은퇴시기에 이르러서도 담보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 후 고정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을 끼고 구입한 40~50평대의 아파트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별다른 은퇴소득이 없다 보니, 앞으로 30년의 은퇴생활에 따른 경제적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현재 거주하는 주택규모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즉 거주하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더 저렴하고 평수가 작은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선택 행위를 주택 다운사이징(housing downsizing)이라고 한다. 미국의 예비 은퇴자 또는 조기 은퇴자들은 부족한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주택 다운사이징 전략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대형 면적의 아파트를 처분할 경우 관리비 등 고정지출을 줄일 수 있고, 처분 후 차액으로는 담보대출 상환을 충당하거나 평생 안정된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투자자산으로 전환하여 은퇴 소득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7억원대의 중대형 아파트를 처분하여 5억원대의 중소형 아파트로 갈아탈 경우, 매월 아파트 관리비는 물론 재산세, 보험료까지 절감할 수 있다. 차액 2억원은 고정소득이 없는 은퇴생활에서 적은 금액이 아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2억원으로 매년 약 4%대의 투자소득을 창출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800만원의 은퇴소득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
반면 큰 집에서 계속 살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유지할 경우, 갈수록 길어지는 은퇴생활에서 부채가 생활수준을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은퇴소득이 부족하거나 부채를 상환할 추가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원금상환액과 이자는 은퇴자산을 고갈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은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빚을 갚거나 줄이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은퇴시점에 주택담보대출이 있을 경우 잠재적인 기회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택 다운사이징과 더불어 생활비가 적게 드는 지역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재 얼마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거주지 이동에 따라 얼마를 절감할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거주 지역을 변경할 경우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곳인지 ▦자녀와 너무 떨어져 있진 않은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시설은 충분한지 ▦병원, 교통편의, 문화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막연히 생활비가 적게 들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지역과 장소를 선택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행복하고 편안한 은퇴생활을 보내려면 기본적인 생활편의 시설과 서비스는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주택 다운사이징의 재무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다운사이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녀를 키우면서 살던 정든 주택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와 손자, 손녀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의 넓은 주택을 선호하기도 한다. 주택 다운사이징은 은퇴소득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지만 이렇듯 민감한 감성적 문제도 있다.
이형종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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