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우리나라에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77위의 실력으로 석유 1번지에 진출하고 12억 배럴의 원유 채굴권을 확보한 것이다. 세계 메이저회사들도 들어오기 어렵다는 시장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유전개발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뭘까. 성공 비결은 바로 편지에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유전개발권을 따기 위해 UAE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7번을 보냈다. 이 대통령은 친서에서 "지금은 한국의 실력과 기술이 부족하지만 산업화 경험이 있다. 아무것도 없이 조선 1위, 자동차 4위, 반도체 1위를 만들었다. 석유산업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후 협상은 일사천리였다. 편지는 이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그래서 일본 문학의 대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엔도 슈사쿠는 "편지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적의 도구"라고 까지 말했다.
사실 편지는 이로움이 굉장히 많다. 한 자, 한 자 적은 편지는 쓴 사람의 진심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받는 사람에게는 신뢰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편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준다. 일본 외식업체인 와타미 그룹의 와타나베 미키 회장은 직원들을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질책경영으로 유명하지만, 자필로 직원들에게 편지를 쓰며 따뜻한 관심을 쏟아 부어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 주는데도 편지는 큰 도움이 된다. 요즘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따위를 지칭하는 '미친 존재감'처럼 편지는 받는 순간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편지를 볼 때마다 쓴 사람을 떠올려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준다. 게다가 요즘에는 손으로 쓴 편지가 드물어 기억이 오래간다.
5월 가정의 달이 저물어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과 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세계 10개국 5,190명을 대상으로 '행복의 지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가족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답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 정(情)의 민족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목한 가족에 금이 가는 것은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갈등을 해결하고 화목을 찾는 데는 진심을 담은 편지만한 게 없다.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녀에게 마음을 실어 편지를 쓰자. 이왕이면 이메일 보다 손으로 편지를 쓰자. 가정의 달이니 덜 쑥스럽고 핑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김명룡 우정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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