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이동의 사다리/루비 페인 지음·김우열 옮김/황금사자 발행·268쪽·1만4,000원
빈곤층에게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반면 중산층은 물건, 부유층은 하나뿐인 물건이나 유산, 혈통을 중시한다. 빈곤층에게 돈이 소비하는 것이라면, 중산층에게는 관리, 부유층에겐 보존하고 투자하는 대상이다. 유머의 소재도 계층마다 다른데 빈곤층은 사람과 섹스에 관한 우스개를 즐기고, 중산층은 일과 성취, 부유층은 사회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소재로 삼는다.
자칫 빈곤층에 대한 차별적 언사로 들릴 수 있지만 빈곤층 교육 전문가인 루비 페인은 저서 <계층이동의 사다리> 에서 이런 계층간 차이를 제대로 아는 것이 빈곤층의 계층 상승을 돕는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교사 출신인 그는 이 책에서 30여년간 실제 경험한 다양한 사례들을 토대로 빈곤층, 특히 아이들이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실질적 방안을 제시한다. 계층이동의>
페인은 가난을 '한 개인이 자원 없이 지내는 정도'로 정의한다. 그 자원에는 흔히 말하는 돈만이 아니라 부정적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기파괴적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정서적 반응을 통제하는 힘(정서적 자원), 읽기 쓰기 계산하기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지적 능력과 기술, 건강,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시스템, 역할 모델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들 가운데서 특히 특정 집단에 내재된 암묵적 신호와 관습을 뜻하는 불문율에 방점을 찍는다.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이동하려면 중산층의 불문율을 익혀야 하며, 이것이 바로 빈곤층 교육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계층 간 차이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그는 "학생들에게 중산층의 불문율을 가르치되 아이들이 자기 세계의 불문율을 멸시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빈곤층의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면 교육자가 빈곤층 학생과 부모를 상대할 때 느끼는 분노와 좌절이 상당 부분 누그러질 것이다"고 조언한다.
정서적 자원도 중요하다. 힘겹고 불편한 상황과 거기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을 견뎌 내게 하는 힘이 바로 정서적 자원이다. 중산층의 불문율을 안다 해도 그것을 체화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그러려면 감정은행(emotional memory bank), 즉 습관적으로 느끼는 익숙하고 편안한 감정을 닫아 두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안과 중산층의 규칙을 배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장소가 바로 학교라고 강조한다. 빈곤층에 대한 배려는커녕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논리가 득세하는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에서는 꿈같은 얘기다. 교사들보다 이 땅의 교육 정책, 복지 정책을 책임지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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