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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평양의 잠재성…자본주의 바람 분다면?

입력
2011.05.2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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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임동우 지음/효형출판 발행·288쪽·1만8,000원

"북한은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정보의 대내ㆍ외적 유통을 심하게 규제하는 등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나라다. 따라서 일반인이 북한에 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직접 얻기는 어려우며, 모든 정보를 TV나 신문, 잡지 등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정보가 대부분 각 매체의 구미에 맞춰 여과됐다는 사실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건축설계사 임동우씨가 평양의 도시 공간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개발 상상을 더해 책으로 펴냈다. 바로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다. 저자는 기아와 핵무기의 나라로만 알려진 북한의 한복판, 수도 평양이란 도시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북한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자는 한마디로 평양이 생각보다 잘 구성된 도시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평양에는 공원과 대규모 광장, 상징적 기념비와 건축물, 생산 시설 등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실제로 평양의 녹지 공간은 서울의 2배에 이른다. 평양 방문자들이 가장 놀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레닌이 혁명 후 모스크바를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수도로 건설하려 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념은 에비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운동인데 이는 19세기 산업화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안된 도시계획안이다. 이 영향으로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전원도시와 비슷하게 녹지 인프라와 다핵화를 통해 도시의 팽창을 억제하고 도농 격차를 최소화하려 한다.

반면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토지 사유화가 가장 중요한 세금 수입원이다. 때문에 공공영역을 최소화하고 세금을 매길 수 있는 사유 토지를 최대화하는 게 도시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다. 이는 도시조직 개발에서 대도로를 확장시켰지만 공공영역과 녹지공간을 무시하는 결과도 낳았다.

"북한 관련 뉴스에서 늘 군사 퍼레이드 무대로 비춰지는 김일성광장을 그저 독재 정권의 야욕이 서린 공간으로 보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 광경에서 세계 여느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평양만의 특징적 도시 구축 환경을 밝혀낼 것인가. 이 사소한 시선의 차이는 북한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 큰 차이를 낳을 수 있다."

평양이 잘 구성된 도시기반 시설을 갖춘 데는 역사적 이유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전후 복구 시기부터 1970년대에 걸쳐 건설됐는데 이 시기 북한은 지속적 경제성장과 안정화를 이뤘다. 잘 알려진 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70년대 이전까지 북한의 국민총생산(GDP)은 한국을 앞지르고 있었다. 한때 평양이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이상적인 사회주의 도시'에 근접한 도시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기반시설에 대한 유지ㆍ보수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른 도시의 퇴색은 불가피했다. 평양은 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현대적 계획도시이기도 하지만 주택단지와 생산 시설이 뒤섞여 있는 어지러움도 안고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중소도시라는 사회주의의 이상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기반 시설의 조직 자체는 높은 지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양의 기반 시설이 현재까지 잘 유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다른 사회주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평양은 특징적인 세 가지 도시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생산의 공간, 녹지의 공간, 상징의 공간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들 공간이 도시가 자본화 과정으로 이행할 때 적절한 변형을 거친다면 시장경제 원리를 능동적으로 흡수하면서도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넷째 장, '평양의 도시적 잠재성'이다. 여기에서는 김일성광장의 지하를 서울 코엑스 같은 복합공간으로 개발하는 상상, 92년 경제난으로 공사가 중단됐던 류경호텔 주변의 주거 시설을 비즈니스 특구로 재개발하는 상상, 평양에 혼재된 공장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상상 등을 그래픽으로 실사 사진과 합성해 넣어 놨다. 저자는 평양 시가지가 대동강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처럼 향후 개발도 대동강을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저자는 대동강변과 두루섬이 새로운 개발 지역으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아파트 단지가 성냥갑처럼 들어선 상상도를 사진과 그래픽으로 합성했다.

평양의 미래에 주목하라는 게 책의 결론이다. "평양은 그동안 여러 개발 과정을 통해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를 구현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현재 평양이 가진 DNA다. 이제 평양이 기존의 DNA를 어떻게 변화시켜 새로운 시대에 반응할 것인지 주목할 때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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