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 최대 아이스쇼는 빙산의 일각…얼음바다 밑엔 생명이 춤춰
홍성택그린란드탐험대가 베이스캠프를 친 일루리삿은 그린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일루리삿은 이누이트말로 빙산이란 뜻이다. 이 도시에 들어서 바닷가로 나와 보면 왜 빙산이 도시의 이름이 됐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루리삿은 거대한 빙하와, 그 빙하가 만든 아이스피오르드, 또 바다를 가득 메운 수많은 빙산들로 2004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됐다.
빙산의 출발점은 그린란드 내륙에 있는 아이스캡(Icecap)이다. 수 만년간 계속 눈이 쌓여 만든 만년빙이다. 이 만년빙이 넓고 두껍게 형성된 것이 빙상(Ice Sheet)이다. 그린란드 내륙의 대부분을 빙상이 덮고 있다. 얼음 두께는 최고 3,000m에 이른다. 일부 지역은 얼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아 해수면보다 낮아지기도 한다.
이 무거운 얼음은 땅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다. 바로 거대한 얼음의 흐름인 빙하(Glacier)다. 빙하가 흐르고 흘러 바다로 밀려와 물 위로 툭 불거져 나온 것이 붕빙(Ice Shelf)이고, 붕빙이 부서져 떨어진 것이 빙산(Iceberg)이다.
일루리삿 바로 옆에는 거대한 서멕쿠얄렉빙하가 내려온다. 북반구에서 가장 크고, 그 흐르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하루에 약 40m를 흘러내린다. 그 빙하에서 떨어진 빙산들은 바로 큰 바다를 만나지 않는다. 빙하가 깎아낸 피오르드를 통과해야 하는데 워낙 그린란드가 추운 곳인 데다 쏟아져 나오는 빙산의 양이 많다 보니 좁은 피오르드가 빙산으로 가득하다. 길이 40km, 폭 6, 7km인 이 캉기아피오르드의 수심은 200~300m. 빙하의 끝부터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피오르드 전체 수면이 빙산의 얼음으로 꽉 차 이를 아이스피오르드(Ice Fjord)라 부른다.
아이스피오르드 안에서 적당한 크기로 녹아 빠져나가거나 떨어져 나간 얼음덩이들이 마침내 바다 위로 둥실둥실 떠내려가 빙산이 된다. 그 적당한 크기란 게 수면 위의 높이만 15층 빌딩과 맞먹고, 길이는 2, 3km에 육박하는 것들도 있다. 웬만한 섬 크기의 덩어리다. 물위로 드러난 빙산의 크기는 실제 덩치의 8분의 1이라고 한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 거대한 빙산이 대서양의 해류를 따라 북위 40도 뉴욕 인근까지도 흘러간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빙산도 그린란드에서 나온 것이다.
일루리삿의 빙산은 그린란드 전체서 나온 빙산의 10%를 차지한다. 하루 200만톤. 뉴욕시가 1년 사용하는 물의 양이다. 그래서 항상 일루리삿 앞바다는 거대한 마천루를 이루고 있는 빙산의 장대한 광경을 선사한다. 워낙 빙산이 많다 보니 파도도 치지 않아 바다는 물수제비를 뜰 수 있을 정도로 평온하다.
세상에 똑같이 생긴 빙산은 없다고 한다. 떨어져 나온 그 모양도, 바닷물에 녹아내리는 그 형태도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빙산 중 상당수는 푸른빛을 내뿜는다. 청빙(Blue Ice)이다. 눈이 오래 쌓이고 눌려 얼음이 됐다가 그 얼음이 또 더 큰 압력으로 눌려 생겨난 고밀도의 얼음덩이다. 일루리삿 앞 빙산 바다에서 만나는 푸르스름한 청빙의 빛은 옥(玉)보다 사파이어보다 매력적이다.
빙하가 흘러내리는 속도는 느리지만 그 거대한 덩이가 흐를 때 내는 힘은 엄청나다. 그 힘이 날카롭게 산을 깎고, 좁고 깊은 바다인 피오르드를 만들어낸다. 빙하가 훑고 내려온 흙은 빙산과 함께 바다로 내려온다. 이 흙 속의 영양분은 바다 속 플랑크톤을 끌어들이고, 플랑크톤을 먹으러 새우가 몰려들고, 새우 때문에 넙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고래 등이 빙산의 바다로 몰려든다. 빙하가 만든 천연 어장 덕에 일루리삿은 그린란드를 대표하는 어업 기지로 성장했다.
일루리삿 빙산 바다는 넙치잡이와 바다표범 사냥의 최적지다. 심해 바닥에 사는 넙치는 긴 줄에 미끼를 끼워 늘어뜨려 놓았다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책상만한 넙치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한국선 귀한 대접받는 넙치가 이곳에선 개 먹이로 던져진다.
일루리삿(그린란드)=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그린란드 썰매견 두번째 이야기
그린란드 썰매견은 독하게 키워진다. 주인은 자신이 기르던 썰매견이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가 6개월이 될 때까지 먹이를 주지 않는다. 알아서 살아 버티면 그때야 자신의 개로 인정하고 목줄을 걸고 밥을 주기 시작한다. 나면서부터 야생을 습득, 살아남아야 한다. 체력이나 체격은 모르지만 정신력 하나만큼은 세계 그 어느 개보다 강하다. 다른 개들보다 이빨이 유독 긴 것도 야성이 그만큼 많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오랜 기간 강하게 키워졌고,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지금의 그린란드 썰매견이다. 현지인들은 그린란드 썰매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루리삿은 그린란드 썰매견의 수도다. 3,000여마리가 도시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썰매견이 살 수 있는 그린란드의 북극권 전역엔 1만8,000여마리의 썰매견이 산다고 한다. 해당 지역의 전체 사람보다 많은 숫자다. 일루리삿보다 더 북쪽에 있는 카낙에도 썰매견이 많다. 그곳은 썰매를 끌기보단 사냥을 하는 목적으로 키우는 개들이 많다. 카낙의 썰매견은 대신 일루리삿보다 힘이 더 세다고 한다.
일루리삿 시내를 오가다 보면 귀하게 키운다는 썰매견을 죽여 차에 싣고 가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시에서 고용한 전문가들로 주인 없이 배회하는 개들이나 늙어서 힘이 떨어진 개, 병이 들었거나 사람을 물었던 개들을 주인의 신고를 받아 안락사시키는 이들이다. 그린란드 썰매견은 이렇게 주인과 정부로부터 엄격 관리된다.
그린란드 썰매견은 예전엔 캐나다나 알래스카의 썰매견들과 같은 종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 이젠 완전히 다른 종으로 구분된다. 외모도 그린란드 썰매견은 얼굴이 더 크다. 개썰매를 타고 가며 당혹스러운 것 중 하나는 달리는 개들이 쏟아내는 변들이다. 캐나다의 썰매견들은 용변이 마려우면 멈춰서서 해결한다는데 그린란드 썰매견들은 속도도 늦추지 않고 씽씽 달리며 모든 걸 해결한다. 그야말로 질주 본능이다.
그린란드 썰매견을 왜 그리 극진히 보호하느냐는 질문에 일루리삿의 수의사인 산느는 "지구상 가장 험한 환경서 생존해 온 가장 독특한 개다. 그리고 정말 순수한 혈통을 간직한 개"라고 했다.
홍성택그린란드탐험대의 배영록 대원은 "개들이 생각만큼 크지 않아 제대로 힘이나 쓸까 의구심이 들지만 실제 개의 몸을 만져 보면 돌덩이 같은 근육에 깜짝 놀란다"고 했다. 탐험을 나가기 전 암캐에겐 발정 억제 주사를 놓는다. 그린란드 썰매견이 먹이보다 집착하는 건 성욕이다. 암컷이 발정기에 이르면 그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간의 잔혹한 전쟁이 펼쳐진다. 서로 물어뜯어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때론 앞서 가는 다른 개썰매를 끄는 암컷이 암내를 풍길 경우엔 뒤따라가던 썰매의 개들이 앞선 썰매를 그냥 타고 넘어가 덮치기도 한다. 이때는 두 대의 썰매를 이끌던 개들이 한데 뒤엉켜 아비규환을 이룬다. 발정 억제 주사가 부자연스럽고 조금 잔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탐험대를 이끌 개들의 전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알록달록 크레파스 같은 도시 일루리삿
그린란드 전체 인구가 5만명이다 보니 세 번째 큰 도시라 해도 일루리삿의 총 인구는 4,800명에 불과하다. 우리네 작은 읍내 수준이다. 대신 마을엔 3,000마리가 넘는 썰매견이 함께 살고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로 나뉜 주거지를 가로지르는 계곡이 썰매견들이 묶여 있는 곳이다. 낮이고 밤이고 울부짖는 썰매견 소리가 일루리삿 전체서 끊이질 않는다.
그린란드에서 도로란 도시 안에만 있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찻길은 없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방편은 헬기나 비행기가 아니면 바다가 얼어붙은 겨울을 이용한 개썰매뿐이다.
같은 북극권인 캐나다 알래스카 등에선 스노모빌이 개썰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란드선 아직도 개썰매가 더 많이 사용된다. 자치정부도 환경과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개썰매의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일루리삿 도로엔 그린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표지판이 있다. 개썰매 표지판이다. 이 도로 구간은 개썰매가 넘어다니는 곳이니 주의하란 표시다. 차가 드문드문 다니긴 하지만 차와 개썰매가 엇갈린다면 무조건 개썰매가 우선이다.
하얀 눈 쌓인 언덕과 빙산만 보고 살아서일까. 일루리삿의 집들은 마치 크레파스 뚜껑을 열어 놓은 것마냥 알록달록 색감이 곱다. 한 업체가 모두 공사를 한 것처럼 집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바닥을 높게 콘크리트로 올린 위에 나무로 건물을 올렸다. 빨강 파랑 핑크 노랑 주황 초록 등 집집마다 각양각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눈과 얼음의 하얀색과 컬러가 도드라지는 마을 풍경은 부조화한 듯하다가도 또 어떻게 보면 잘 어울리는 듯 묘한 느낌이다.
일루리삿 시가지 중심엔 현지인의 전통 식단인 고래고기와 바다표범 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버젓이 서 있다. 최근 관광객이 많이 늘면서 와이파이존이 가능한 카페도 생겨나고 있다.
일루리삿(그린란드)=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화산재에 출발 막히고… 썰매견 보호정책에 루트 변경
이번엔 천재지변이다. 한국일보가 꾸린 홍성택그린란드탐험대의 출정이 화산재 때문에 막혔다. 탐험대는 25일(현지 시간) 본격 탐험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린란드 일루리삿공항에서 헬기로 대원 썰매견 장비 등을 수송해 40분 거리인 해발 1,500m 고지의 스위스캠프로 이동, 개썰매 탐험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탐험대가 식량과 장비 조달 등 탐험 준비를 마친 24일 헬기 운항사인 그린란드항공으로부터 최근 아이슬란드에서 분화한 화산재가 날아와 그린란드 전역에서 헬기와 여객기 등 항공기의 운항이 전면금지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망연자실한 탐험대는 이날 오후 늦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려 봤지만 항공 운항 재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탐험대는 계속 준비 상태를 유지하다 하늘길이 열리는 순간 바로 탐험에 나설 계획이다. 탐험대가 헬기로 이동할 스위스캠프는 마을이나 군기지가 형성돼 있는 곳은 아니다. 빙상 위의 허허벌판인 이곳은 예전 캠프가 차려졌던 곳으로 헬기 조종사들이 이ㆍ착륙 경험이 있어 비교적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고 판단해 선택된 장소다.
스위스캠프의 좌표는 북위 69도33분49초, 서경 49도20분09초다. 탐험대가 이곳까지 헬기를 이용하는 이유는 해안가의 도시와 해발 1,500m 이상의 빙상 사이엔 빙하가 만들어 놓은 깊고 위험한 얼음 틈새인 크레바스가 도처에 깔려 있어 개썰매를 끌고서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헬기로 올라온 탐험대는 스위스캠프를 출발, 해발 1,500~2,000m 고도를 유지하며 북극권(Arctic Circle)의 끝단인 북위 66도33분까지 내려온다. 이 선에 닿고 난 뒤 바로 북상, 북위 82도 개썰매로 갈 수 있는 그린란드의 최북단까지 달린다. 탐험대는 이후 다시 북서쪽에 있는 그린란드 최북단 도시인 카낙까지 계속 개썰매를 이용해 달릴 계획이다.
탐험대가 처음 목표로 한 건 그린란드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종단이었다. 그린란드로 입국하기 전 탐험을 관할하는 자치정부의 환경부에서 수차례 확인을 통해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아 진행된 탐험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최종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농업 어업 사냥을 담당하는 다른 부처의 규제조항에 부닥치게 됐다.
그린란드 썰매견을 북극권 밑으로는 절대 내려보내선 안 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썰매견이 북극권 아래 지역 동물들에게 해를 끼칠까 걱정해서가 아니라 북쪽의 썰매견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남쪽에 내려왔던 썰매견이 다른 종의 새끼를 임신하거나 병에 걸려 썰매견만의 천국인 북극권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그린란드 북극권에는 오로지 썰매견만 키울 수 있다. 수도인 누크 등이 있는 북극권 아래에는 애완견 등 다른 종의 개가 자라고 있어 이들과의 혼종이 생기지 않도록 법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린란드인들의 썰매견에 대한 보호 의식은 대단하다. 탐험 전 썰매견은 광견병 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이는 썰매견이 탐험대원을 물면 어쩌나 걱정해서가 아니라 탐험 기간 혹시나 광견병 인자를 지닌 북극여우 등에게 썰매견이 물릴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홍 대장은 도시와 격리된 해발 1,500~2,000m의 고지대 설원에서만 달리고, 개들이 절대 도시나 마을로 내려갈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자치정부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했다. 결국 탐험대는 그린란드 전체 종단 대신, 합법적으로 개썰매가 가능한 북극권 종단으로 탐험 루트를 변경하기로 했다. 대신 북위 82도의 최북단에서 다시 북서쪽의 카낙까지의 구간을 탐험 루트에 추가했다. 전체 개썰매 운행 탐험 구간은 처음 구상했던 3,700km보다 300~400km 길어졌다.
20일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은 직접 일루리삿의 베이스캠프를 찾아와 탐험대를 격려했다. 장 회장은 “한국일보 창간 57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모험과 도전의 탐험인 만큼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며 “무엇보다 탐험대의 안전한 귀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험대는 10~15일마다 한 번씩 헬기 등의 물자 보급을 받아 7월 중순께 탐험을 완료할 계획이다.
일루리삿(그린란드)=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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