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A씨는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B종목을 미리 7,000여주 사들였다. 그런 다음 상한가에 2, 3주 매수 주문하고 하한가에 1주 매도 주문하는 방식을 20분 간 4,000회 이상 반복했다. A씨 혼자 무려 2만 1,000여주를 매수ㆍ매도한 것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투자자들은 거래량이 늘고 있다고 착각해 B종목으로 몰려들었다. 20분간 B의 주가는 1% 상승했고, A씨는 200여만원을 손에 쥐게 됐다.
최근 A씨처럼 특정 종목을 골라 짧게는 2분, 길게는 20분 동안 분당 300회 이상의 단주 주문을 내 시세차익을 노리는 '초단기 불공정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시감위)에 따르면 4월부터 5월 중순까지 같은 수법으로 적발된 사례가 20건을 넘는다. 시감위 관계자는 "신종 불공정거래 수법으로 하루 평균 20개 종목을 옮겨 다니면서 같은 방법을 반복하고, 한꺼번에 거액을 얻기 보다 수백 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감독 당국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 종목당 평균 0.5~1% 정도의 시세 차익만 얻고 빠져 나온다는 것.
이에 앞서서는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을 투기판으로 전락 시킨 스캘퍼(초단타매매자)의 존재가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LW는 미리 정한 시기에 특정 가격으로 주식을 사거나 팔 권리를 가진 파생상품인데, 소액으로도 비싼 종목에 투자할 수 있는 지렛대(레버리지) 효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스캘퍼가 하루 최소 100차례 이상을 초단타 매매하면서 이 시장을 시세 변동이 급등락하는 도박판으로 만들었고, 일반 투자자들은 거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투자정보가 부족한 탓에 막대한 손실을 봐야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ELW에 투자한 개인들이 본 손실은 2009년에만 5,186억원에 이른다. 반면 스캘퍼는 2009년 한해 1,043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스캘퍼와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하는 증권사간의 은밀한 유착 관계도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이나 불공정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신종 수법까지 등장하자 금융당국도 강력 대응에 나섰다.
우선 금융위원회는 ELW 시장을 교란해온 스캘퍼의 초단기매매를 ▦허수주문과 ▦과다 시세 관여에 의한 불공정거래로 규정하는 방안을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반영,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스캘퍼들의 하루 매매 횟수나 거래량을 제한하는 방식 등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또 금융위는 허술한 규정으로 사각지대에 놓였던 선행매매ㆍ우회상장 등의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 조종성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아울러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익도 전액 환수하기로 했다. 물론 현재도 법원 판결에 따라 벌금을 부과 받기는 하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벌금도 부당이익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부당이익만큼 과징금을 물리는 제도를 마련 중이다. 다만 이후 법원의 벌금형 선고로 이중처벌 논란이 일수 있으므로,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도 신종 수법인 초단기 불공정거래의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혐의가 드러나면 금융감독원에 통보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의 2차 조사에서도 불법성이 인정되면 검찰에 통보된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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