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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완 콩파뇽·정과리 교수 문학과 예술 주제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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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완 콩파뇽·정과리 교수 문학과 예술 주제로 대담

입력
2011.05.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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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의 탈피와 새것에 대한 갈망, 예술의 자율성 추구,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 역사 진보와 자유에 대한 희망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성(modernity)이 이성의 전체주의화, 과학기술의 자연 파괴, 극심한 빈부 격차, 예술의 상업화 등으로 귀결되면서 근대를 극복, 또는 반성하려는 노력이 적지 않았다. 그 중심이 20세기 후반 사상계를 휩쓴 레비 스트로스,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사상가들. 근대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은 급진적 운동과 연결됐지만 반대로 역사와 미래에 대한 체념으로 체제에 백기투항하기도 했다. 그들이 모두 타계하면서 사상적 구심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문학과 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이를 주제로 프랑스와 한국의 저명 비평가들이 만나 대담을 나눴다.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처음 방문한 앙투완 콩파뇽(61)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와 정과리(53) 연세대 국문과 교수다. 프랑스 최고 석학이 모인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현대문학을 강연하는 콩파뇽은 “바르트 이후 프랑스 최고의 문학이론가”(정과리 교수)로 꼽힌다.

콩파뇽 교수는 특히 포스트모던의 물결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꿋꿋이 근대성을 옹호해 온 학자. 최근 프랑스 사상계의 흐름에 대해 “이론적 급진성에 벗어나 지금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조건과 그 토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소개한 그는 근대성에 대해 “근대에 저항해 온 사람들이 실제로는 근본적 근대인들”이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 예술의 자율성, 역사의 진보 등이 헛것이더라도 그 근대성의 환상을 버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과리= “20세기 후반은 프랑스 철학과 문학이론이 세계의 인문학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 나아가 예술의 전위적 실천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인간 활동에 기본 개념과 방법론을 제공했다. 선생은 에서 이런 프랑스 이론의 득세가 20세기 후반 갑자기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콩파뇽= “프랑스는 20세기 초ㆍ중반 비엔나나 옥스포드, 미국에서 일어난 이론적 동향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곳에 널리 퍼진 형식주의에 관해 늦게 발견을 했는데 이런 뒤처짐이 오히려 어떤 시기에는 앞서 가게 해 준다. 프랑스에서 새 이론이 출현한 시기는 대학이 민주화하고 대중화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대학에 몰린 1960년대에 그 이론들이 방법론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 당시에는 철학에서 벗어나고 싶은 경향이 강했는데, 지금은 과학철학 정치철학 윤리철학 등 세부 철학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르트르에 가려져 있었던 레이몽 아롱도 다시 각광받고 있다. 예전에는 이론적 급진성을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덜 급진적이고 덜 과격해졌다고 볼 수 있다. 토크빌의 민주주의론 등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기본적 조건과 토양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정과리= “선생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선생은 90년 을 내며 근대성의 다섯 가지 역설적 특징을 다뤘고, 2005년에는 을 냄으로써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근대성의 특징을 압축하면 ‘자기 배반’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인간 개인이 자기 환상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면서 세상을 이끌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피로를 누적시킨다. 사실 오늘날은 포스트모던한 상황이 더 문제가 아닌가? 가령 근대의 경우 진정한 예술의 조건은 자기지시성과 자율성일텐데 여전히 이 조건이 유효하다고 보는가?”

콩파뇽= “나는 여전히 근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근대에 대한 믿음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관련돼 있는데 이는 환경 문제라는 역설에 부딪힌다. 모든 발전은 불편함이 동반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발전으로 이를 보상받을 수 있다. 예컨대 우리가 석유나 화석 연료가 고갈될 것을 알지만 발전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석유를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을 찾게 될 것이다. 예술의 경우 예술가들이 자율성을 향해 전진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말라르메나 발레리 같은 시인조차도. 예술의 자율성을 근대의 환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나 자율성 등의 환상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보수주의적 상태, 즉 정신이 정체되고 마비된 상태에 있게 된다. 환상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상황을 봤을 때 이 말을 하고 싶다. 근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헛된 것이더라도.”

정과리= “선생은 에서 근대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근본적인 근대인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콩파뇽= “반근대는 근대의 근본적 역설이다. 근대화의 실제에 절망한 사람들이 반근대인들인데 사실 그들은 근대의 이상(理想)을 간직한 이들이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의 기치는 천부인권 자유 박애 등이었으나 실제는 자본과 노동이 분리되면서 억압과 예속이 발생했다. 근대의 이상에 충실한 사람들은 근대에 저항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정과리= “이번 포럼에서 소설의 미래에 대한 선생의 발표가 흥미롭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소설이 곧 하이퍼텍스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바흐친이나 후기 바르트 등의 이론가들을 인용하며 소설의 혼종성, 즉 근본적인 오염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소설은 줄글이라는 숙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떤 다차원적인 것도 소설은 줄글 안에 가두어야 한다.”

콩파뇽= “디지털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문자 소설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음향 기능이 가미된 소설도 나온다. 독서의 방식도 변하고 있다. 예전엔 독서가 혼자 읽는 고독한 작업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며 책을 읽는다. 디지털 방식을 사용한 작품은 아직은 소수다. 이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디지털 문학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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