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은 부산에 살고 있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부부입니다. 비장애인들은 40살 된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지, 부모님이 아들부부를 먹여 살리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 노부모님들은 아직도 저희에게 돈을 주셔야 합니다. 지난해까지 1년에 2,3번씩 생활비를 보태주셨지만, 이제 몸이 안 좋으셔서 막노동도 할 수 없어 그것마저 주시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습니다. 제발 복지법을 바꿔주세요."
지난해 말 38인이 청와대에 제출된 '부양의무제'폐지 탄원서 중의 일부이다. 빈곤사회연대 등 26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은 25일 이와 비슷한 사례 51건을 모은 '부양의무제 피해 상담사례집'을 발간했다. 부양의무제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빈곤층이어도 직계 부양의무자가 일정부분 소득이 있거나(본인과 부양의무자가구 소득총합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일 경우), 일정기준 이상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46세의 한 여성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저는 일을 감당할 수 없고, 저 혼자 아이들 세 명과 생활하는데 큰아들이 대학 휴학하니까 바로 수급자에서 탈락했어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얼마나 번다고 저와 동생 둘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학교를 다니면 수급자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등록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휴학을 하면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경우다.
한 60대 남성은 "두 아들이 모두 지적장애1급입니다. 몸이 병약해서 엄청난 병원비가 지출되고 있습니다, 수산물 유통업을 해서 먹고 살긴 하는데, 이제 60대라서 일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도 매일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정말 살기 버거워요"라고 말했다.
공동행동 측은 "나이 들어 노동능력이 없는 부모가 집 한 채를 갖고 있거나, 10년 넘은 중고차 한 대를 가지고 있어도 수급권이 거부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복지철학은 저소득층 지원에 중점을 두는 선택적 복지라고 하지만 실상은 이마저도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2009년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데도 수급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340만명(170만가구)이며, 차상위 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미만)까지 합치면 총 410만명(200만가구)이다. 국내 인구의 약 8.4%이며,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인구의 2.5배가 넘는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1차적으로 정부에서 지원하고, 정부가 추후 경제력이 있는 자녀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도 제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완화해 수급대상을 늘리는 방안(본보 4월21일자 1ㆍ12면)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 등 여야 의원 12명도 지난 15일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완화해 10만4,000명이 추가로 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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