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아래, 허름한 4층짜리 쪽방 건물에는 마음의 문을 닫은 한 소녀가 산다. 곁에는 그런 동생을 챙겨주는 오빠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식들을 챙기는 퀵서비스맨 아빠가 있다. 26일 밤 11시 40분 방송하는 KBS 현장르포 '동행'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 모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수정이네의 희망 찾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15년 전 직원 20명을 두고 작은 화물운송회사를 경영하던 아빠 정환(52)씨는 2,000여만원 가량의 귀금속 화물을 분실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잃어버린 화물 값을 물어내기 위해 쓴 일수가 화근이 됐다. 이자에 이자가 더해지면서 빚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났다. 가정 불화로 아내와도 헤어져 5년 전부터는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좌절할 여유도 없었다는 아빠는 퀵서비스맨이 되어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부모의 다툼이 잦아지면서 규석(16)이와 수정(13)이는 점점 말수를 잃었다. 끝내 헤어지는 부모를 지켜보며 아이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수정이는 아빠의 일 때문에 1년 간 남의 집에서 지내야 했다. 아빠와 함께 살면서도 늦은 밤까지 쪽방에서 혼자 지내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수정이는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어쩌다 대변을 못 가리게 되는 등 몸에도 이상이 왔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운 오빠 규석이는 이것저것 챙겨주며 수정이 마음을 어루만지지만 한번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런 수정이와 어른스러운 규석이를 지켜보는 아빠는 모두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롭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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