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내부의 정책노선 논쟁이 뜨겁다. 한나라당 구주류와 신주류 사이의 논쟁이 감세와 '반값 등록금'을 넘어 남북 문제로까지 빠르게 번진 가운데 민주당에서도 손학규 대표의 '민생진보' 노선을 둘러싼 논쟁이 고개를 들었다. 진보진영 통합 논의에서 정책 합의가 핵심 과제로 등장한 것까지 더하면, 기존의 정책노선 수정 논란에 정치권이 온통 매달린 셈이다.
진보진영을 제외한 주류 정당에서 정책노선의 수정을 이렇게 활발하게 논의한 예는 드물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1990년의 '3당 통합'이나 그에 맞선 통합민주당 출범 등의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행해진 미조정을 빼고는 없었다. 이 점만으로도 우선은 반갑다.
민주화 4반세기를 눈앞에 두고 정당 내부의 논쟁을 무조건 화합을 해치고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나 현상으로 여기던 시각은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민주화 진전에도 불구하고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나아지지 못한 현실을 감안하면, 국내의 정치 민주화가 성숙기로 접어드는 신호탄으로 여길 만하다.
더욱이 이런 논쟁이 4ㆍ27 재보선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해석의 결과이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득표전략에서 비롯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유권자의 요구라는 구체적 현실에 발을 디딘 이상, 그저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끝날 수 없어 민생을 축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 내의 논쟁은 이른바 '좌 클릭'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이동 폭'에 대한 이견의 조정 과정이다. '민주당 흉내내기'라는 거부감이 없을 수 없지만, 결국은 다수 유권자의 집합적 좌표 쪽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민주당 손 대표가 밝힌 '민생진보'도 여당의 반대쪽에서 가운데로 조금 더 가자는 내용이다. 이런 여야의 좌표 이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념적 정체성 논쟁보다 민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실용성 논쟁을 축으로 삼게 마련이다. 그 결과는 앞으로 여야 사이의 구체적 정책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변화와 체질 개혁을 위한 모처럼의 논의에 여야 모두 성실하게 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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