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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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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입력
2011.05.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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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어떻게 역사교육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할 때가 많다. 교대생들은 조만간 교사가 되어 역사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역사공부를 해왔는지 물으면 대부분 암기였다고 답한다. 누구도 역사학을 감정 이입을 훈련하거나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교과서가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훈련, 판단력을 배양하는 일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는 과거의 타자를 이해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역사가는 조각 난 과거의 흔적, 사료들을 찾아내 정리하고 독해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이입한 후 그 결과를 글 등의 형태로 표현한다. 좋은 역사교육은 암기를 강요할게 아니라 역사가의 작업과정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흥미롭거나 어려운지 혹은 정치적인지 배워야 한다.

한국사 교과서를 개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하지만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는 것만큼 어떻게 가르칠지도 중요하다. 단지 재미있는 체험만을 강조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체험하고 활동할지, 그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박물관이나 역사 유적지에 자주 간다. 그러한 활동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관련 설명을 외우거나 안내문을 베껴 쓰는데 불과하다. 우연히 영국 역사교과서를 본 일이 있다. 장절의 제목이 모두 질문 형식이었다. 중세를 소개하는 장의 제목은 '중세인들은 흑사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다. 질문을 던진 후 학생들이 아무것이나 생각하고 답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퀴즈를 이용하여 흑사병 원인이 중세의 불결한 화장실 때문이지, 몸의 체액 균형을 잃어서인지, 태양과 행성의 불규칙한 움직임인지, 신의 분노 때문인지 골라보도록 한다.

학생들의 이런저런 답변들을 가지고 토론함으로써 본격적인 탐구 과정으로 유도한다. 교과서는 문제해결 과정에 사료를 제공한다. 사료는 원문 그대로이지만 학생 눈높이에 맞게 정리되어 있다. 화장실의 더러운 공기가 병의 원인이라는 1360년대 의학교수의 주장부터, 1348년 어느 수도사의 편지에 쓰인 모든 고통은 신의 징벌이라는 생각, 토성 목성 화성이 서로 가까워졌을 때 흑사병이 발생한다는 1300년대 의서의 기록, 지진으로 지구 내부 가스가 분출되어 흑사병이 유행했다는 독일작가의 글이 제공된다.

영국 교과서는 다양한 사료를 읽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흑사병에 대한 당대의 생각, 공포심, 대처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안내해준다. 마지막 활동은 학생들로 하여금 당시의 해석들 가운데 어떤 설명이 주된 것인지 찾아보도록 요구한다. 이는 단지 여러 의견과 해석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의 주요생각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다음 질문은 더욱 좋다. 흑사병에 대한 중세의 설명들 가운데 그 이전과 유사한 형태가 있는지 또 새로운 설명은 무엇인지 묻는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역사의 지속성과 변화, 당대와 현재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영국의 역사교과서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 사료들로 채워져 있다. 학생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학생들도 한국사를 외우지 않고 사료를 읽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연관성을 배웠으면 좋겠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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