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경제권을 일컫는 유로존이 출범 12년여만에 최대 분열 위기에 처했다. 그리스 재정 위기 대응책을 놓고, 주로 부자 나라들인 북유럽과 그 반대인 남유럽 국가간 갈등이 다시 불거진 데다가 남유럽 국가들 중에도 그리스와 반(反) 그리스 진영의 입장 차가 커지고 있다. 유로존 미래가 혼란에 빠졌고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는 금융 시장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100억유로(한화 170조원)의 구제 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23일(현지시간) 추가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국영기업들의 민영화와 재정 긴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각국의 환심을 사는 데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인식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 이러한 반응은 이미 이달초 룩셈베르크에서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예견됐었다.
당시 유로존의 강대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 금융과 채무 조정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 놨지만 이에 동조하는 나라는 많지 않았다. 당시 한 회의 참석자는 이를 '끔찍한 시나리오'라고 평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각에선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유로존을 탈퇴하겠다고 경고하는 나라들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특히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 금융을 가장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리스 정부의 방만 탓에 그 위기가 자신들에 전이되고 있다며 그리스가 좀 더 긴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는 남유럽 국가들 간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도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에 신중한 태도다. 그리스에 대한 부채 삭감이나 만기 연장 등의 채무 재조정을 해 주면 채권 보유국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ECB는 450억 유로나 되는 그리스 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이달초 룩셈베르크 회의에서 그리스 채무 재조정 제의가 나오자 회의장을 뛰쳐나갔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래저래 유로존 부유국 국민의 부담으로 방만한 운영으로 정부 곳간이 빈 나라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핀란드에서는 야당이 그리스 지원 반대를 정치적 구호로 내세워 여당의 발목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그리스 정부의 긴축안은 국내에서조차 야당 및 노조의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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