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對)중동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9일 새 정책을 발표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국경선 문제에 대해 ‘1967년 이전 기준론’을 제시한 것이 화를 불렀다. 이제까지 미국의 입장은 1967년 이전 국경선은 “현실성이 없는 만큼 합의에 의해 조정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 골란고원 등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을 반환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이 같은 변화는 그 동안 팔레스타인이 요구하던 것이어서 기실 새롭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반발했고 팔레스타인은 환영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담대함’은 단 사흘을 버텨냈을 뿐이다. 그는 20일 백악관에서 열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냉랭함 속에서 끝나고 미국 내 유대인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22일 말을 바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국 내 최대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연설을 통해 “내 입장이 잘못 전달됐다”고 물러섰다. 그는 ‘67년 국경선’언급은 “(3차 중동전 발발 직전인) 1967년 6월4일 존재했던 것과는 다른 국경을 설정하기 위해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특히 67년 이후 인구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실과 지난 44년 동안 생긴 변화를 새 국경 획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아주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서 오바마 대통령이 후퇴한 지점을 따져보면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견지하던 입장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67년 국경선 기준’발언은 바뀐 것도 없이 한차례 평지풍파만 일으킨, 하나 마나 한 얘기가 됐다. 왜 그랬을까.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조급함이다. 진보든, 보수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골치 아픈’현실적합성이 아니라 ‘단순 명쾌한’선명성이다. 정치적 지향성을 감안하면 특히 스스로 진보 진영에 속해 있음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어려운 때일수록 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취임 이후 줄곧 변화와 개혁을 주창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용감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론 선명성을 좇는 결정을 했다.
그렇다고 선명한 것이 틀렸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치와 외교의 현실 세계에서 옳고 그름은 가변적이지만 그래도 상대적 정의가 오바마 대통령의 ‘67년 국경선’주장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허나 정의의 궁극적 실현을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하고 타이밍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국경선 문제에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타이밍은 빨랐고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번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그의 타이밍은 오히려 늦었다.
미국 내에서는 최근에 중동 지역 등에서의 민주ㆍ자유 가치의 확산에 관한 한 전임 부시 대통령이 “옳았다”는 얘기가 더러 나오고 있다고 한다. 볼 수 없을 것 같던 민주화 열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옳았음을 오바마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는 곤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정을 전제하지 않고는 정권은 존속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가는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가장 부침이 심한 것이 대북 정책이다. 정책의 연속성은 전 정권이 옳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국제부장 고태성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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