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이현세처럼 유명 작가도 아니다. 강풀 같이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지도 않았다. 그래도 만화 마니아들이 그의 존재감을 인정했고, 그의 만화에 경배를 바쳤다. 1999년 첫선을 보인 그의 대표작 ‘프리스트’는 국내에서만 50만부가 팔렸고, 세계 33개국에서 100만부가 팔려 나갔다. 한국 만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됐다.
6월 9일 개봉하는 ‘프리스트’의 원작자인 만화가 형민우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자신만의 성공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만화가를 꿈꾸지도 않았고, 할리우드 입성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그를 23일 서울 행당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왼팔과 오른팔에 영어 단어 ‘Mercy(자비)’와 ‘Justice(정의)’를 문신하고 해골 문양 반지를 낀 그에게선 강한 개성과 외골수의 고집이 풍겼다. “대형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며 스트레스를 날린다”는 말에선 SF와 서부극, 스릴러, 호러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만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만화 ‘프리스트’는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악마가 된 신부 이반의 행적을 그린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섬세한 그림과 색채, 여러 장르를 혼합해 낸 이야기가 호평을 받았다. “영화화 기대는 고사하고 언제 접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대로 한번 그려 보자”며 시작한 작품. 형민우는 “좋아하는 만화와 게임, 영화들을 한데 모아” 결국 2003년까지 16권을 출판하게 된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미래 세계로 공간을 옮겼고, 가족을 잃은 프리스트(폴 베타니)가 신의 뜻을 거역하고 복수하는 내용을 담게 된다. 영화화는 2003년께부터 추진됐다. ‘프리스트’의 미국 출판을 담당한 출판사 도쿄팝이 할리우드와의 접촉에 발벗고 나섰고, 2006년 소니픽쳐스와 계약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면의 그림이 필름으로 옮겨져 스크린에 투영되기까지 8년 가량의 시간이 걸린 셈. 형민우는 “나는 유명 만화가도 아니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리 초조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당초 근육질의 스타 제라드 버틀러가 주인공 물망에 올랐다. 그가 주연한 영화 ‘300’이 기대 밖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의 캐스팅은 물 건너갔다. “작품 의뢰가 줄을 잇고 몸 값이 치솟았으니 한국의 이름 모를 작가의 만화를 원작 삼은 영화엔 나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형민우는 추정했다. ‘다빈치 코드’ 등에 출연한 폴 베타니는 버틀러 못지않은 할리우드 스타. ‘미션 임파서블3’의 매기 큐 등이 출연했다. 형민우는 “‘LA컨피덴셜’의 가이 피어스가 주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만 했다. 이번 출연진도 A급이라 영화사에서 신경을 나름 썼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스트’는 13일 북미(미국 캐나다)에서 개봉, 23일까지 2,440만달러를 벌었다. 해외 시장 수입까지 포함하면 6,200만달러로 제작비(6,000만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그리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이다.
대학입시에 여러 차례 실패한 뒤 아버지 일을 돕던 형민우는 스물두 살 때 “젊은 날의 도피처”로 만화 그리기를 택했다. 94년 만화 잡지 챔프 신인작가 응모전에서 가작을 받으며 만화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6월 4일부터 방송 예정인 KBS1 대하사극 ‘광개토대왕’의 원작인 ‘태왕북벌기’를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출발이 남달라서 그럴까. 그는 “만화가로서의 장밋빛 인생을 기대하지 않았고, 오로지 뭘 그릴 것인가만 생각했다”고 했다.
딱히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중의 보편적 사랑도 받지 못한 그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자기다움”을 강조했다. “대중과 동떨어져 있다 생각한 내 작품이 할리우드까지 가는 것을 보면 콘텐츠엔 정답이 없는 듯하다. 자본과 대중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를 존재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하건, 어디로 흘러가건 자기 일만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완성도만 갖춘다면 가장 자기다운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 만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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