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는 고엽제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고엽제 살포는 미군의 각본과 지시에 따라 한국군이 투입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67년 3월,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은 DMZ에서 고엽제 사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엽제는 작전 시야를 확보해 북한군의 은밀한 침투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주한미군은 육군 생물학연구소의 현장조사 보고서를 기초로 본국 정부를 설득했고, 미 국무장관은 한국 총리와의 협의를 거쳐 같은 해 9월20일 고엽제 사용을 승인했다. 양국 최고위층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68년 3월4일, 주한미군사령관은 식물통제 프로그램에 따라 고엽제 살포를 지시했다. 한 달여 전인 1월21일 김신조 등 무장공비의 침투로 북한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점이었다.
미군은 고엽제 살포의 효과를 높이고 북한군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주의사항도 강조했다. ▦고엽제가 DMZ 북쪽으로 흩날리지 말 것 ▦비나 눈이 오는 경우, 또는 12시간 안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작업을 중단할 것 ▦민가의 곡식에 피해를 주지 말 것 ▦공중에서 살포하지 말 것 ▦반드시 감독관의 참관 하에 뿌릴 것 등이다.
하지만 미군은 직접 고엽제 살포에 나서지 않았다. 모든 작업은 한국군이 도맡았다. 병사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는 게 보호시설의 전부였다. 200갤런(757ℓ)의 고엽제를 실을 수 있는 살수차가 동원되거나 차량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는 3갤런(11ℓ)의 고엽제를 등에 지고 분무하는 장비가 활용됐다.
이처럼 양국은 긴밀한 고엽제 분업체계를 갖췄다. 69년에도 DMZ에 에이전트 블루 3,905갤런과 모뉴론 1,377파운드를 살포했다. 분말인 모뉴론은 철모 등에 담아 손으로 뿌리기도 했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78년 캠프 캐럴에 묻힌 것으로 알려진 고엽제도 한국 정부가 인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24일 "최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인 고엽제에 대해 국내 반입량과 사용 후 잔여량을 한국 정부가 몰랐을 리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70년대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이 2만명 철수하고 카터 행정부가 인권을 강조하는 등 한미간 불신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미군이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고엽제를 묻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경기 부천시 오장동의 캠프 머서 부지에도 64년 유독물질을 매몰했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고엽제 매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곳에는 현재 육군 수도군단 공병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부천시는 "해당 군 부대와 토양, 수질조사 등을 통해 매몰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사실일 경우 정부와 협의를 거쳐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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