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오너의 일가가 소극장 130여개가 밀집해 있는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 대형 공연장 개관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혜화역에 기업형슈퍼마켓(SSM)인 롯데슈퍼가 기습 입점한 데 이은 것이어서 반발이 크다.
20일 서울시와 공연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공연예술센터 바로 뒤에 지어지고 있는 동숭동복합공연장을 롯데그룹 총수 일가 중 한 사람이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4월께 완공 예정인 이 건물은 지상 6층(연면적 1,526㎡), 지하 5층(연면적 2,321㎡) 규모로 총 1,000여석의 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3개 공연장 가운데 큰 것은 500여석 규모로 주로 상업 장르인 뮤지컬 공연을 할 것으로 보여 연극 등 순수예술 공연을 주로 하는 150석 내외의 대학로 소극장들이 반발하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이 부지는 롯데그룹 회장의 셋째 부인 A씨와 딸이 2009년 지상 7층, 지하 3층 건물을 매입해 지난해 10월 유니플렉스로 양도했다. 모녀는 등기부상 62억5,000만원에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으며 토지가(2009년 공시지가 기준)만 30억여원에 달했다. 하지만 A씨와 딸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해 공연장으로 재건축하고 있는 유니플렉스는 A씨가 이사, A씨 오빠가 대표이사로 지난해 8월 법인 등록해 A씨가 사실상 소유했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내 공연사업 계열사인 샤롯데시어터 관계자는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혜화역 인근 할인마트 바로 옆에 기업형슈퍼마켓(SSM)인 롯데슈퍼를 기습 입점하기도 했다. 피자 전문점이 있었던 이 장소는 개점 직전까지 '리모델링 중'이라는 현수막이 가리고 있어 인근 상인 누구도 SSM 입점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CJ와 홍익대도 대학로 진출을 예정하고 있다. CJ는 동숭동에 대규모 공연장 CJ아트센터를 신축 중이다. 12월 완공 예정인 이 건물에는 대극장(1,030석) 중극장(570석) 소극장(270석) 등 3개 공연장이 지상 3층 지하 4층 규모로 들어선다. 대학로 최대 규모가 될 이 공연장의 개막작은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다.
CJ는 지난해도 대학로에 지상 4층 규모의 컬처스페이스엔유(359석)를 개관했으며 대학로 예술마당(1,2관)도 임대ㆍ운영 중이어서 대학로에만 총 6개 공연장을 운영하는 셈이다.
또 홍익대가 연건동에 내년 3월 완공 예정인 대학로 캠퍼스 건물(지상 15층ㆍ지하 6층 규모)에도 607석의 대형 공연장과 연습실 지원시설 등(1~5층)이 들어선다.
CJ 관계자는 "대학로에 좋은 시설의 대형 공연장이 들어서고 뮤지컬까지 볼 수 있게 되면 오프 브로드웨이가 브로드웨이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현재도 대학로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창작공연은 물론, 대관도 하지 못한 채 1년에 절반 이상을 비워 둔 군소 극장들이 많이 있는데 재벌 기업 중심의 대형 공연장들이 들어와 외국 라이선스 뮤지컬로 싹쓸이하면 아예 고사할 것"이라며 "1980년대 시작된 대학로 예술 생태계 형성에 전혀 기여한 적이 없는 이들이 그 과실만 따 가겠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또 "대학로를 연극특구로 지정하겠다는 서울시(종로구)는 건축허가를 내준 것 외에 한 게 없다"고 꼬집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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