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돌아왔다. 강원도 산골 은둔생활 3년 만에 하산한 그의 모습이 흡사 검객 같다.'흡사'가 아니라 영락없는 검객이다. 그의 손에는 날카롭게 벼린 복수의 칼이 쥐어져 있었다. 다큐멘터리 <아리랑> 이다. 아리랑>
그는 자화상일 뿐이라고 했다. 야누스처럼 작품 속의 두 얼굴 김기덕과 그들의 모습을 기록한 또 하나의 김기덕이 등장하는 <아리랑> 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그곳에서 그는 분노와 복수의 칼을 거침없이 휘둘렀다.'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부르는 그의 <아리랑> 은 저주이다. 아리랑> 아리랑>
김기덕은 칸 영화제가 잠자고 있는 자신을 깨웠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그는 결코 잠자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자학과 증오의 칼을 끝없이 갈았던 모양이다.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언제나 정치적이고 자기 식구 챙기기에 매달리고 동양에 대한 비뚤어진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유럽의 유명영화제만이 자신의 일기장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어쩌면 <아리랑> 이야말로 선생님의 '검사'를 염두에 두고 쓴 계산된 일기장일 수도 있다. 아리랑>
김기덕 감독의 계산된 전략인가
칸 영화제에서의 그의 수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아리랑> 은 충분히'주목할 만한 시선'을 끌 만했다. 김기덕이라는 감독의 캐릭터와 국제적 명성이 그렇고, 그의 기인적 행보가 그렇고, 작품의 독특함과 실험성과 그의 색깔이기도 한 메시지의 섬뜩한 표현방식이 그렇다. 그렇다고 복수의 칼이 된 <아리랑> 의 존재까지 온당하고 당당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그가 퍼부은 비난과 분노에도 공감할 부분은 있다. 의리와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대자본의 노예가 된 한국의 영화판을 직설적으로 꼬집은 대목은 모두를 아프게 한다. 폭력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더 잔혹한 폭력과 죽음을 선택해온 그가 자기모순적인, 누가 들어도 어느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아는"도끼로 때려죽이고, 망치로 때려죽이는 죽음에 대한 영화가 수없이 많다"고 비판한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악역배우를 향해 악의에 가득 차 "악역을 통해 자위하는 거잖아. 너희는 가슴 안에 있는 성질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잖아.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고 한 것은 특정인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자신의 작품에 적은 출연료를 받고 기꺼이 그런 역을 맡은 배우들조차 자위이고 타고난 악인이란 얘기다. 그는 또 자기를 떠난 후배 감독에게 "배신자" "쓰레기"라고 하면서 "죽이려 간다"고 권총을 들고 누군가를 죽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가 폭로한 약속, 배신, 피해 그 모두가 사실일 수 있다. 상처와 울분을 되갚아주기 위해서라도 복수는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에게 복수는 심리학자 마이클 멕컬러프가 <복수의 심리학> 에서 말하는"두 번 다시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더구나 <아리랑> 에서의 복수는 현실이 아니라 욕망이고 환상일 뿐이다. 아리랑> 복수의>
그렇다고 문화와 예술에서는 복수심과 모욕을 마음대로 표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또 다른 사적 폭력인 셈이다. 진실과 정당성 여부를 떠나 <아리랑> 은 일방적 선언이었고 공격이었다. 물론 상대도 언론의 반론권처럼 '무기 대등원칙'에 따라 똑같은 방식의 반격이 가능하지만 긴 시간,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아리랑> 과 같은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아리랑> 아리랑>
문화ㆍ예술로 복수를 하는 세상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무기로 하면 일방적 자기 승리로 끝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서전을 통해 복수를 한 신정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문화와 예술작품을 개인적인 복수와 저주의 칼로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 번 휘두르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도 없지만, 자신은 물론 문화 예술의 혼까지 황폐하고 이악스럽게 만든다. 자서전을 내놓고 지난 삶이 억울해 흘린 신정아의 눈물이나 칸 영화제에서 산발을 한 채 눈물 섞인 목소리로 김기덕이 부른 노래 <아리랑> 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기보다는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아리랑>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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