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 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 옛날 사람들은 집에 00제니, 00헌이니 하는 이름을 붙였지요. 물론 지금도 아파트라든가 다세대주택의 경우 000동 0000호라 부르는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이름이라 보기는 힘들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자세도 지금처럼 여성 상위체위라 부르지 않고 삿갓치기라 불렀지요. 이런 식으로 각 체위의 이름이 다 있었지요.
풀을 뽑을 때였지요. 이름을 알고 있는 풀보다 이름도 모르는 풀을 뽑을 때 더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뽑았으면 싶더라고요. 나무를 베어 낼 때도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고요. 그런데 이와 반대 되는 경우도 있지요. 개를 식용으로 기를 때는 이름을 지어 부르지 않지요. 이름 부르던 개를 잡아먹기는 힘드니까요.
사려 깊은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네요. 솔새, 박새, 뻐꾸기, 이렇게 새 종류를 새의 이름으로 착각해 부르지 않고, 각 새마다 새들 세계에서 불리는 고유한 이름을 알아내, 그 새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고 하니 말이죠. 시인이 새 이름을 부르면 '승도야,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하며 감격해 할 새의 작고 동그란 눈동자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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