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도회지 공원이나 술집 한구석
장식품으로 살아가는 저 홀로 대나무
제 뜻과 상관없이 이주되어
실향을 사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저 나무에게서
옛 소련 시절 강제분할 이주를 겪은
사할린 동포의 얼굴을 본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오의 눈물을,
죽어 상품이 된 체 게바라의 혁명을 본다
한 시대 양심의 본이었으나
자본의 데릴사위가 되어 웃음 파는
쓸쓸한 선비의 초상을
● 청송마을, 목련마을, 장미마을 등 나무 이름이 붙은 아파트 단지를 가끔 만났다. 아파트 주변을 훑어보면 몇 그루의 소나무나 몇 십 그루의 목련 나무가 눈에 띄었다. 복사골, 닥나무골, 버드나무골…. 옛 지명들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에 쓸쓸함이 번졌다. 당호(堂號)를 지을 때, 집을 지으며 할 수 없이 희생시킨 자연물을 잊지 않기 위하여 나무 이름을 빌려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송마을은 소나무를 기억하려는 마을인가, 소나무처럼 살고 싶은 염원이 담긴 마을인가.
도회지 한복판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섬 같다.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거리에 에워싸여 있는 작은 섬. 자연 속에 인공구조물이 담겨 있는 곳이 시골이라면 인공구조물 속에 자연이 갇혀 있는 곳이 도회지다. 나무섬을 바라보는 맘은 편치 않으나 어찌 하겠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회지는 더 삭막해질 게 뻔한데. 자연을 잊지 않고 살려는 도시 사람들의 마음이 새겨 놓은 푸른 부적(符籍)으로 봐 주면 되지 않을까.
도회지에서 만난 대나무를 통해, 동포애와, 인류애와,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시인이 있어 대나무는 덜 외롭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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