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세 학생 600여명이 다니는 독일 헬레네랑에는 유럽 교육 혁신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학교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2001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지수가 독일 내 학교 중 최우수 성취를 보여 세계 교육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학교도 불과 20여 년 전에는 엘리트 교육과 암기식 교육에 치중했다. 교육 선진국으로 평가 받는 독일과 스웨덴의 학교들은 어떻게 창의 인성 자율 행복을 논하는 학교로 거듭 날 수 있었을까. 11~16일 전국 14개 도시에서 그 노하우를 엿볼 수 있었던 '제 1회 학교혁신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덴마크 등 5개국 교사들이 내한해 전국을 순회하며 자신의 학교혁신 경험과 학교의 변화상을 전했다. 전국 교사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마무리된 이번 심포지엄에서 소개된 선진국의 학교혁신 비결을 살펴봤다.
도전의식을 자극하라
독일 김나지움 중 자체적으로 변화를 시도한 유일한 학교인 헬레네랑에의 대표적인 철학은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학생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소규모 그룹을 이룬 학생들은 주기별로 프로젝트를 스스로 정하고 교사의 지도하에 자율적으로 예산을 운영해가며 과제를 수행한다. 예컨대 '산림과 숲'이라는 과제를 정한 그룹은 함께 산림 탐방을 계획ㆍ구성하고 실행하며 생물과 자연과학적 지식을 학습한다.
이 학교 개혁의 산 증인인 알베르트 마이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잘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머리 손 발 가슴을 모두 사용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김나지움은 평판이 매우 좋았지만, 다수 학생들은 학교를 지루해할 정도로 엘리트 교육을 해왔다"며 "1986년을 기점으로 학생 스스로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교실 안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하게 하는 교육방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프로젝트 수행 형식의 교수법. 마이어 교사는 "스스로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에 대해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학습하고 또 손 가슴 머리 발을 동시에 움직여 학습함으로써 학생들의 사회성과 학습욕구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며 "이렇게 학습과정에서 학생의 의지와 책임을 존중하고 이를 교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도전 의식을 고취시켰다"고 말했다. 학기말이 되면 학부모에게 성적표 대신 학생의 장단점 책임감 등을 꼼꼼히 기록한 포트폴리오를 공유하고 의논한다. 이 과정에서 학업성취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는 것.
그는 "새로운 변화를 도입한 초기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교사들의 합의, 학부모의 이해, 교육당국의 지원을 차례로 얻어가며 시행착오를 이겨나갔다"며 "한국 학교에서도 뜻있는 교사들이 학부모와 민주적으로 충분히 소통하고 외부의 지원을 확보한다면 이런 혁신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계획하게 하라
스웨덴의 푸투룸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스 알레니우스 교사에 따르면, 이 학교는 1997~2003년 혁신적인 학습 환경을 위해 학교 재건축을 실시했다. 교실에서 25~30명 학생들이 칠판을 바라보고 앉아 수업을 듣는 형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수업을 위해, 학교 안에 팀별 공간을 조성했다. 중심부에 200㎡의 공동공간을 두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12개의 작은 공간(작업장, 교실, 휴게실, 교무실)을 두는 식이다. 160여명의 학생들은 공동 공간에 설치된 무대에서 다양한 공통의 수업을 듣기도 하지만, 나머지 작은 공간에서 각종 프로젝트와 개인작업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책과 준비물을 들고 곳곳의 공간을 누비며 자신의 과제에 집중한다.
이 같은 유연한 수업이 가능한 것은 한 교사가 12~15명의 학생으로 이뤄진 그룹의 멘토를 맡아 밀착지도하기 때문이다. 한 그룹은 매일 아침 25분간 교실에서 만나 그날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계획하고, 교사들은 학생의 계획을 확인하고 발달상황을 기록한다.
한스 알레니우스 교사는 "스스로 계획한다는 것은 무엇을 배울지 계획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떻게 배울지도 선택하고 고민한다는 의미"라며 "예를 들어 전기에 대해 공부한다면 무조건 교과서에 나온 전기회로의 개념 등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 과학자의 위인전을 읽고 발표하는 등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아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는 이 과정을 지원하고 상담할 뿐이다.
그는 "학생들이 각자의 프로젝트에 빠져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결국 창의적인 혼란"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총 6,500여명의 교사, 교육전문가 등이 참석해 학교 혁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교육晝졌綸?緇? 21세기교육연구원 등 전국 20여개 교육시민단체와 함께 심포지엄을 공동 주관한 전국교직원노조는 20일 심포지엄을 마무리 하며 "우리교육이 경쟁과 차별을 뛰어넘어 협력과 지원으로 꽃피는 참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되새기게 됐다"고 밝혔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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