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8시40분께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의 한 아파트 2층에 강도 두 명이 침입했다. 집주인은 강도들과 격투를 벌이다 중상을 입었다. 집주인은 생명이 위급한 상황인데도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치는 강도들에게 의자를 던져 한 명의 다리에 부상을 입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약 20분 뒤에야 도착했다. 먼저 달려와서 강도들을 뒤쫓던 아파트 주민들과 합세한 경찰은 다리를 다친 강도를 검거했다. 잡고 보니 이 강도는 전날 바로 앞 동 아파트를 털었던 도둑과 동일범이었다. 당시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주민들의 항의에 경찰은 "파출소에서 사이렌을 켜고 달려오는데도 이렇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치안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신도시 내에 파출소를 신설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경찰의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23일 파주시에 따르면 2009년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된 운정신도시에는 현재 약 4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아직 계획인구(12만4,000명)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인구 자체로 보면 지방의 웬만한 군보다 거주인구가 많은 편이다. 운정신도시는 주택 90% 이상이 분양됐고, 현재도 아파트 주민들은 속속 입주하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를 전담할 파출소가 신설되지 않아 파주경찰서 교하파출소가 운정신도시 치안까지 같이 책임지고 있다. 교하파출소에는 기존 관할구역 112신고 외에 운정신도시 사건까지 쏟아지는데다 신도시 남쪽 고양시 경계지역까지는 거리도 멀어 출동시간이 10분 이상 걸리기 일쑤다. 경기 남부지역의 경우 올해 3월 초부터 통합112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신고 현장 평균 도착시간이 지난해 5분10초대에서 4분10초대로 크게 단축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치안의 손길이 멀다 보니 운정신도시 입주자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위층에서 내려오던 강도를 베란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외진 곳인데 파출소도 없어 두렵다"는 식의 치안 불안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운정신도시 남쪽 한울마을5단지에 사는 서봉섭(38)씨는 "올해 3월에는 단지 내 성추행범을 우리가 직접 찾아내 경찰에 넘기는 등 주민들이 인터넷 카페에서 의견을 공유하며 치안대책을 세우는 실정"이라며 "취약지역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달라고 수 차례 건의했지만 사업시행자인 LH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파출소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빨라도 내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운정신도시에 계획된 공공시설 부지 4곳에 파출소를 신설하기 위한 예산을 신청했다"며 "예산이 내려오면 치안수요가 급증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파출소를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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