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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음악이라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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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음악이라는 축복

입력
2011.05.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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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는 가수다> 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이미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 주제를 다시 꺼내는 것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때는 임재범 씨가 출현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이 프로그램은 그가 나온 이후 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혹자는 이 프로그램이 기술적인 가창력을 과시하는 기교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이 좀 다른 것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오히려 상황이 정확히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쪽으로, 그러니까 올바른 쪽으로 갔다.

그는 지금까지 세 번 무대에 섰고 그중 두 번이나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누구도 그가 화려한 기교를 구사해서 그리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의 지적대로 그의 가창에는 교과서적인 완벽성에 부분적으로 미달하는 대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었다. 그의 힘은 세 노래가 품고 있는 울림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능력, 그러니까 '해석'과 '표현'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노랫말을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노래의 서사를 살아내고 있었다.

혹자는 또 방송을 통해 알려진 그의 최근 불행이 그의 노래에 신파적 호소력을 더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의 과잉이 예술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안다. 아니, 그런 미학적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모든 과잉들에는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돼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노래에 우겨넣고 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청자들 각자가 자신의 이력을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내고 있었다. 눈물은 그럴 때 흐르는 것이다.

세 노래의 노랫말이 애초에 그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 주류대중음악에서 노랫말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버렸다. 노랫말이란 게 굳이 필요하다니 난감하다, 라는 식의 노랫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의 영혼도 함께 빈곤해진다. 우리가 이 사태에 어느덧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이다. 그가 부른 세 노래는, 그 노래를 듣는 이가 아프게 건너온 삶의 특정 국면을 소환해 공감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그것들은 차례대로 사랑, 인생, 우정의 서사를 품고 있다.

다시 음미해 볼까. 첫 곡 '너를 위해'(채정은 작사)의 후반부는 이렇게 끝난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 줄 거야." 두 번째 곡 '빈 잔'(조운파 작사)의 백미는 여기다.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음은 나의 빈 잔에 채워줘." 세 번째 곡 '여러분'(윤항기 작사)에서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라는 구절에는 '함께 울어주겠다'는 흔한 표현을 뛰어넘는 시적 울림이 있다.

그가 맹장수술의 여파로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들었다. 그는 단 세 번 무대에 올라서 '전쟁 같은 사랑'과 '빈잔 같은 인생'과 '음악 같은 우정'을 노래했다. 이 말은 그가 그 세 번 동안 '모든 것'을 다 노래했다는 말과 같다. 그가 보여준 공연들은 문학에서 '작가—작품—독자'로 구성되는 소통의 공동체를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거의 완벽하게 실현한 사례처럼 보인다. 그와 그의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음악이라는 축복에 대해 다시 예의를 갖추고 싶어졌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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