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럽다. 온갖 그럴싸한 언명(言明)과 수사(修辭)가 횡행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어 허황되기만 하다. 공정사회의 슬로건은 오늘도 청와대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건만 국책사업 선정을 둘러싼 싸움은 민심을 나누고 있고, 불공정과 비리는 더욱 구조화되고 있어 허탈하다.
지난 주 이명박 대통령은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통해 민주 영령들이 성취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굳건히 하는 '더 깊은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국내 6대 로펌의 고문, 전문 인력 96명 중 무려 53명이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등 정부부처 출신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건만 그들끼리의 전관예우의 관행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로 서민들은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데, 사전 정보를 입수한 대주주와 권력자들은 이미 예금 인출을 끝낸 상황이었다니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권력과 돈의 독과점 깨야
이명박 정부는 집권 2기를 맞아 '공정한 사회'를 국정 핵심 가치로 천명하고 사회통합을 강조해왔다. 집권 전반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한 청와대는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공정사회'의 기치를 내세웠다. 제 1차 공정사회추진회의 이후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5대 추진방향과 부처별 8대 중점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본디 공정사회 구현이나 사회 통합은 특정 정부의 국정 목표라기보다는 이 세상 모든 정부의 보편적 지향점인데다 대외적 슬로건이나 몇 가지 추진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갖고 꾸준히 이루어 나가야 할 민주정치 공고화의 최종 목표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한 사회와 사회통합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폐쇄적 독과점 사회의 타파다. 필연적으로 해체해야 할 걸림돌이다. 독과점은 불쾌함이나 불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특히 그 독과점이 권력과 돈과 명예의 영역으로 수평적, 수직적으로 구조화될 때 일반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에 몸과 마음을 상한다. 그 독과점 사회가 폐쇄적이라 도저히 진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는 점차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폐쇄적 독과점 사회를 해체하는 길은 원칙적으로 세 가지다. 안으로부터의 자발적 해체와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타파다. 물론 안팎의 공동 작업을 통한 제3의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점진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자생적 좌파' 논쟁 이후 지난 4ㆍ27 재보궐 선거 때 강남 좌파에 이어 분당 좌파라는 신조어가 선보였다. 학자나 언론인마다 함의를 다르게 해석하지만, 대체적으로 고학력, 고소득자로서 진보이념을 지닌 집단군을 의미한다. 단순히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실망한 집단이라기보다는 폐쇄적 독과점 보수사회에 대한 반기를 든 집단이다.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사실 보수든 진보든 폐쇄적 독과점으로는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 '그들만의 리그'는 결국 고립을 자초하여 자멸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의 정치의식이 높아진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위기는 곧 기회다. 폐쇄적 독과점 사회를 열린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정치의식을 반영할 정치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전관예우와 관련한 제도 정비는 작은 행보의 시작이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각 부문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종식시켜 상생과 공존의 가치가 살아 숨쉴 수 있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일상적이라 더 이상 그 속담이 필요 없는 사회로 진입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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