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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벤처 代父의 끝없는 도전] <6> 카이스트 박사과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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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벤처 代父의 끝없는 도전] <6> 카이스트 박사과정 이야기

입력
2011.05.23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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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다시 카이스트로 돌아와 박송배 교수님 지도하에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대한전선에서 4년간 한글 프린터 등 각종 단말기, 미니컴퓨터, 개인용 컴퓨터, 컴퓨터 운영체제 개발 등을 수행한 필자는 나름대로 한국 최고의 IT 실전 개발 경험자로 자부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도래할 IT분야의 내공을 심화하여 세계적인 학자가 돼 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입학한 것이었다.

향후 메디슨을 설립하게 되는 초음파진단기 연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은사인 박 교수님은 관대하게도 당신이 수행하고 있는 의료용 초음파 연구를 강요하지 않고 필자에게 자유로운 연구를 허용해 주셨다. 이는 당시 초음파 관련 연구를 강요당하고 있던 모든 '회로 및 시스템 연구실' 학생들의 미스터리였다. 박 교수님은 '산업과의 연계'가 학생 지도의 철학이었다.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카이스트가 산학협력을 주도해야 한다는 신앙에 가까운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산학협동 과제를 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를 하라고?

얼마 후 교수님이 호출했다. "자네 초음파 연구는 하지 않아도 되네. 다만 시스템 설계의 귀재이니 핵심 부분 설계만 해주게. 그러면 다른 학생들에게는 실제 실험을 하도록 조치하겠네." 컴퓨터 분야 연구를 자유롭게 하게 해준다면, 그 정도는 매우 좋은 제안이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경쟁업체 제품을 분석하고 그보다 훨씬 뛰어난 설계를 해드리겠다"라는 약속을 하고 물러나왔다.

다음날부터 분석과 설계에 착수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회로와 시스템을 두 달 만에 완성해 교수님께 전달하고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한전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학문을 쌓으면 다가올 IT시대의 선도자가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장밋빛 꿈에 빠져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교수님이 불렀다. "자네가 설계한대로 학생들에게 구현을 시켜 보았는데, 작동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왔네. 어쩔 텐가." 방법은 하나, 직접 구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님의 신공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결국 필자도 초음파진단기 연구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선임 박사과정이던 김진하 박사님(전 지멘스 의료기 부사장, 알피니언 사장)과 프로젝트를 양분해 추진하는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박사과정의 이승우(전 메디슨 사장), 석사과정의 김주한(전 터보테크 연구소장), 김영모(전 메디슨 엑스레이 사장), 장흥순(전 터보텍 사장, 현 서강대 교수), 다른 김영모(현 경북대 교수), 신동희(전 파워텍 사장) 등이 필자의 지휘하에 한국 초음파진단기 연구의 여명을 연 쟁쟁한 멤버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드디어 완성이 된 시스템은 경쟁업체에 비해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PC의 10배 이상 규모로서, 당시 한국에서 개발된 최대의 전자장비라고 자부했다. 경쟁사 대비 시스템의 크기를 무려 4분의 1로 축소한 획기적인 신개념의 설계였다. 필자의 설계는 동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현시키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이 회로는 메디슨 창업 이후 경쟁력의 한 축이 되었다.

카이스트는 산학협동 프로젝트만으로 박사학위를 주지 않는다. 세계적인 SCI급 저널에 원칙적으로 논문을 두 편이상 실어야 한다. 이제 프로젝트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문이 진짜 논문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오는 특허가 바로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원천특허라는 것이 박송배 교수님의 철학이었다. 다들 논문 주제를 잡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논문 주제는 노력보다는 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5년이 되도록 학위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당시 수두룩했다.

의료용 초음파 기술은 신호처리 분야, 영상처리 분야로 크게 나뉜다. 우선 필자가 자신 있는 시스템설계인 영상처리 분야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왔다. 부채꼴모양 초음파신호를 모니터에 왜곡 없이 표시하는데 당시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구현을 위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추가해 1년 후 실제로 구현해 비교한 결과는 10만불이 넘는 최고가의 미국 장비보다 간결한 구조로 월등한 성능을 보였다.

이 새로운 개념은 이 분야 최고저널인 IEEE Medical Imaging에 게재돼 'Excellent'(훌륭한)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변환클럭이라는 회로기술은 IEEE Instrumentation에 실려서 박사학위에 필요한 요건은 충족하게 되었다. ULA라 명명한 이 기술이 메디슨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초음파신호 처리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인체에서 반사되는 많은 수의 초음파를 집속하는 기술의 꿈은 연속집속이었다. 이러한 꿈의 기술을 어느 날 꿈에 떠 올렸다. 기존의 신호처리 순서를 바꾸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더구나 이 기술의 구현은 기존의 복잡한 아날로그 기술이 아니라 단순한 디지털 기술로 가능하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SDF라 명명한 이 기술은 주문형 반도체 투자가 필요해 실제 구현은 메디슨 상장 후에야 이뤄졌다. 지금도 안타까운 점은 디지털 초음파 원천 기술이 당시 카이스트의 재정적 문제로 해외 특허 출원이 되지 않아 60억불에 달하는 산업을 평정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국내 출원 1년 내에 해외 출원을 하지 않으면 권리가 없어지는 것이 국제 특허다)

이후 새로운 초음파 이미징 방식 등 다수의 논문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일련의 획기적인 논문의 결과로 박송배 교수님은 학자들의 로망인 IEEE co-editor가 되셨다.

영원한 은사님 박송배 교수님의 철학과 집념은 초음파 연구를 통하여 꽃을 피웠다. 학문적 수월성이냐, 산학 프로젝트냐, 이 두 가지 목표를 두고 지금도 카이스트는 고심을 하고 있다. 아니 모든 대학들이 고심하고 있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목표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산학협동 과제를 통하여 현장의 실제적 문제를 발굴하고, 그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은사님은 실증하셨다. 카이스트 전기과에서 박송배 교수님 연구실에서 가장 많은 벤처 창업(상장사만 메디슨 터보테크 파워텍 등 3개가 있다)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상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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