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 따로 없다. 영화를 만드는 족족 불렀고, 올 때마다 상을 쥐어 줬다. 지난주 나치 발언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 그는 문제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 진정한 ‘칸의 남자’였다.
칸의 편애는 데뷔작 ‘범죄의 요소’(고등기술위원회상 수상)부터 시작됐다. 그는 ‘유로파’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고,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브레이킹 더 웨이브’)과 대망의 황금종려상(‘어둠 속의 댄서’)도 거머쥐었다. 2009년엔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시나리오를 쓴 ‘안티크라이스트’로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안겨 줬다.
그는 언제나 도발적이었고 거침없었으며 종잡을 수 없었다. 남성과 여성 성기를 짓이기고 잘라 내는 ‘안티크라이스트’에 대한 비판을 그는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이다.” 논쟁의 중심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이 그의 작품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왔다.
도발이라면 김기덕 감독도 폰 트리에 못지않다. 그의 영화가 얼마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면 여성이 가장 싫어하는 감독으로 종종 꼽혔을까. 그는 2006년 ‘괴물’의 흥행을 두고 관객 수준을 입에 올렸고, 자신의 영화를 국내 개봉하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도 했다. 폰 트리에와의 가장 분명한 차이라면 칸의 그에 대한 애정결핍 정도 아닐까. 그는 2005년 ‘활’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2007년 ‘숨’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지만 수상 인연은 없었다.
“히틀러를 조금 이해한다”는 발언이 실언이든, 잠재의식의 표출이든, 의도된 눈길 끌기이든 폰 트리에는 이제 칸에 발을 들여놓기 어렵게 됐다(올해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던 그의 ‘멜랑콜리아’는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여행가방 손잡이가 부러지면서 폰 트리에가 밤새 흩어진 짐을 정리하다 잠을 못 자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동정심 깃든 외국 온라인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전력을 보면 반드시 그 때문은 아니니라.
반면 김 감독은 그의 이력 중 가장 독하고, 가장 파격적인 영화 ‘아리랑’으로 칸영화제 첫 수상(주목할만한시선상)의 영예를 안았다. 폰 트리에의 퇴락 속에 떠오른 그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의 도발은 예술적 승화를 이루며 칸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것인가, 아니면 폰 트리에처럼 자신을 나락으로 떠미는 자충수가 될 것인가. 그의 올해 갈지자 칸 행보를 보면 기대가 가면서도 불안하고, 불길하면서도 희망이 보인다. 그의 앞이 다시 궁금해진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