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선도하는 글로벌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의 꿈과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꿈이 만나 그야말로 사건을 만들어냈다. 세계 1위 골프용품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인수하게 된 것.
미래에셋 사모펀드(PEF)와 휠라코리아 컨소시엄은 지난 20일 미국 포춘브랜즈로부터 자회사 어큐시네트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어큐시네트는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풋조이 골프화, 스카티 카메론 퍼터, 보키 웨지 등을 가진 글로벌 1위 골프용품회사로 연 매출이 13억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5%를 넘는다.
미래에셋ㆍ휠라의 이번 어큐시네트 인수는 금융 분야와 스포츠마케팅 분야 모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선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화 노력이 첫 결실을 맺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간 국내기업의 해외 유명기업 인수는 기업이 주도하면서 금융회사를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어큐시네트의 매각 주관사가 미래에셋 PEF로 직접 의사를 타진해 오면서 일이 진행된 것. 금융권에서 "박 회장의 끊임없는 글로벌화 노력 덕분"이란 평가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진출은 2003년 12월 홍콩법인을 설립하면서 본격화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중 첫 해외 직접 진출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세계 곳곳에 유명한 선진국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사들이 진출해 있는데 한국의 자산운용사가 현지에 나가 봤자 얼마나 성공하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인도 영국 미국 브라질 등에 현지법인을 착착 세워나갔고, 현지 유명 펀드매니저 등을 영입하면서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우승자 신지애 선수를 후원한 것도 글로벌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미래에셋은 자평한다.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선 골프용품 산업까지 아우르는 골프 강국의 입지를 구축하게 됐다. 남자골프 메이저 챔피언을 배출했고, 여자골프 무대를 호령하는 강국이면서 관련 산업은 여전히 변방에 머물렀던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된 것. 여기엔 "휠라를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회사로 발전시켜 제2의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윤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사실 휠라는 어큐시네트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상당한 관심을 가졌지만, 자금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월 미래에셋측의 제안에 대해 윤 회장이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받아들인 건 이 때문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윤 회장과 호흡을 맞춰온 박정환 전무는 "전 세계 넘버 원 브랜드가 시장에 나왔다는 건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과 휠라가 매각 주체를 만족시킬 만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양측은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의 아시아 시장 점유율이 20~30%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 가격 대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 공략과 기업공개(IPO) 계획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휠라가 2007년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한 뒤 4년여 만에 미국 사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던 경험을 살려 브랜드별로 고급화 유지나 아웃소싱을 통한 대중화 등 상세한 운영방침까지 제시했다.
물론 미래에셋과 휠라가 성공적인 파트너가 된 밑바탕에는 지난 3년 반 동안 다져온 신뢰가 있었다. 휠라의 글로벌 본사 인수 당시 미래에셋 PEF가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뒤 지난해 IPO를 통해 좋은 수익을 낼 때까지 윤 회장의 경영을 곁에서 지켜봤던 것.
결국 '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꾸며 온갖 부정적인 시각을 물리치고 글로벌화에 노력해온 박 회장의 의지와 휠라 본사의 인수에 머무르지 않고 제2의 도약을 꿈꿔온 윤 회장의 도전정신이 세계 1위 브랜드 인수라는 쾌거를 낳은 것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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