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와 신문 등에서 한 항공사가 새로운 비행기를 도입해 운행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둔한 모양새에'저게 과연 뜰 수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첨단 기술의 결정체라고 하지만 최고속도도 마하 0.96에 불과하다. 기차, 자동차 회사를 막론하고 '더 빠르게'를 자존심으로 여기며 기술력을 자랑하던 시대는 지나간걸까.
1976년 5월24일 영국과 프랑스가 양국 합작 초음속여객기인 콩코드기의 미국항로 취항을 각각 시작했다. 예리한 물새 부리처럼 생긴 앞 모양과 삼각형으로 펼쳐놓은 날개는 SF영화에서 바로 나온 듯 했으며 음속의 2배로 총알 속도와 승부한다는 점도 흥미를 더했다. 서울-뉴욕을 6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속도다. 1950년대에 전투기로 음속을 돌파했지만 일반인이 그 두 배 속도의 여객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화제거리였다.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시속 2,500km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기 위해 최대한 날렵하게 만들다 보니 동체가 가늘어져 실내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보잉747에 400명 정도의 승객이 탑승하는데 반해 콩코드는 100명이 정원이었다. 훨씬 비싼 개발비를 들였지만 태생적인 한계로 일반 여객기의 25% 가량의 인원만 태울 수 있었다. 음속을 돌파할 만큼 빠르게 날아야 하니 연료비도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항공권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쌌다. 런던-뉴욕을 오가는 일반 여객기 퍼스트클래스 가격이 5,000달러 하던 당시에 콩코드 운임은 15,000달러 수준이었다. 단지 2배 빠르다는 이유로 4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반석 1,000달러의 15배 운임을 지불해야 하니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비싼 운임 때문에 소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감대를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일반 비행기보다 4시간을 단축했던 콩코드는 거기에 거금을 쓸 수 사람들이 몰렸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좁고 비싼 의자에 어깨를 대고 앉아 기술의 진보를 축하했던 것이다.
불어나는 적자에도 비행을 이어가던 2000년 7월 프랑스 드골 공항을 이륙하던 콩코드는 최악의 사고를 맞는다. 타이어에 파편이 박혀 기울면서 화재가 발생, 호텔에 정면 충돌하면서 탑승자 113명 전원이 사망했다. 울며 겨자먹던 브리티시항공과 에어프랑스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고 2003년 런던 히드로공항을 출발해 뉴욕JFK공항에 내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콩코드는 자취를 감췄다.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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