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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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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종말론

입력
2011.05.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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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종교단체가 주장한 '5ㆍ21 지구 종말의 날'이 조용히 지나갔다.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지진도, 해일도, 폭풍도, 화산 폭발도 없어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유사 이래 끊인 적이 없었던 세상살이의 고통과 행복이 교차했을 뿐이다. LA에 근거를 둔 '패밀리 라디오'라는 이 종교단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국내 인터넷까지 달구었으니 제법 흥미를 불렀던 모양이다. 한동안 무성했던 '2012년 지구 종말론'이나 3ㆍ11 일본 대지진과 해일이라는 현실 사건과 맞닿으면서 파급력이 커질 수 있었다.

■ 종말론은 대개 종교적 뿌리를 갖고 있다. 미확인비행물체(UFO)나 외계 고등생물의 존재와 결합해 외양이 달라진 경우에도 그 속 구조는 종교적 신념 체계와 다르지 않다. 1992년 다미선교회의 '휴거 사건', 94년과 95년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빚어진 '태양사원' 집단자살 사건, 95년 일본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 등이 모두 종말론에서 나왔다. 급속히 교세를 확장한 신흥종교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종교에서도 종말론적 시각이 엿보이지만, 무리한 해석만 아니면 사회적 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

■ 기독교의 '천년 왕국론'은 예수 재림 이후에 찾아올 천년의 축복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원한 신의 나라를 그린다. 이'최후의 심판'을 '지구의 종말'이나 '문명의 종말'로 이어가는 데는 커다란 비약이 필요한 반면 도덕ㆍ종교적 가치의 중요성은 곧바로 일깨운다. 니체가 서구사회의 도덕률의 원천이자 근본 가치였던 기독교 신앙의 동요를 '신의 죽음'이라고 개탄한 지 100년이 넘은 지금 도덕ㆍ종교적 각성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불교의 종말론이라 할 '말법사상' 또한 도덕적 개탄과 새로운 부처의 현신에 따른 교화 희구를 담았다.

■ 신흥종교가 빚은 집단자살 사건에는 교주나 창시자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도 없지 않고, 자살 강요 흔적도 짙다. 다만 경북 문경의 십자가 자살 사건에서 보듯 개인의 신념이 극단적 선택에 이를 수도 있어, '집단 착란'까지 겹칠 때의 폭발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신의 영역인 최후의 심판을 인간의 자의적 잣대를 들이댄 '최종 전쟁'으로 각색해 벌이는 현실의 전쟁에서 종말론의 폐해는 집단 밖으로 크게 번진다. 차라리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죽음을 직시,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종말론의 올가미가 벗겨지지 않을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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