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랄 게 따로 없다. 자신을 떠난 사람과 주변 환경에 대해 울분에 찬 독설을 날렸다. 이 문제적 영화로 상을 받았다. 그것도 세계 최고라는 영화제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3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만든 영화 '아리랑'으로 21일 오후(현지 시간) 열린 제64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시상식에서 이 부문 대상 격인 주목할만한시선상을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스톱트 온 트랙')과 공동 수상했다.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은 새로운 경향의 영화를 주로 소개하는 부문으로 칸영화제의 꽃이라 할 경쟁 부문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2년 연속 한국 영화가 이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게 됐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사마리아')와 베니스영화제('빈집')에서 감독상을 각각 받은 김 감독은 국내감독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본상 수상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앞서 임권택 감독이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씨받이'의 강수연), 칸영화제 감독상('취화선'),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수상으로 3대 영화제 상과 인연을 맺었다.
'아리랑'은 김 감독이 1인 3역의 연기와 촬영, 편집 등을 혼자서 다해 낸 매우 실험적 원맨쇼다. 김 감독은 강원에서 홀로 칩거하면서 디지털카메라(DSLR)로 '아리랑'을 촬영했다. 김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뒤섞인 이 영화에 자신을 떠난 제자 장훈('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감독에 대한 서운한 감정, 한국 영화계 풍토에 대한 비판적 소회 등을 담아 파장을 불렀다. 영화 종반부에 배신자 운운하며 자신이 직접 만든 총으로 살인과 자살을 실행하는 모습을 그려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눈을 녹여 라면을 끓여 먹거나 땅을 파 용변을 처리하는 자신의 근황도 전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2008년 '비몽' 촬영 중 목매는 연기를 하던 주연배우가 죽을 뻔했던 사고, 장 감독 등과의 헤어짐 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몽'까지 13년 동안 15편을 만든 김 감독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다작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이날 상을 받으며 민요 '아리랑'을 불러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영화제 기간 내내 국내외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했고, 칸영화제 방송에 나와선 영화 내용처럼 '한오백년'과 '아리랑'을 섞어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수상 뒤 그는 "영화제를 겨냥해 만든 영화도 아닌데 초대해 줬고, 기대하지도 않은 상을 줘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많은 용기가 됐다"고 주변에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리랑'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간절한 바람을 내비친 김 감독은 주목할만한시선상 수상으로 활동을 본격 재개할 전망이다. 김 감독은 당초 '아리랑'의 국내 개봉을 고려치 않았으나 최근 내용을 다듬은 별도의 편집본을 만들어 한 배급사와 7월 개봉을 조율 중이다. 칸영화제는 22일 경쟁 부문 시상식과 폐막작 상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