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수·오차순씨등… 이식 수혜자들과 한자리
"부창부수라고 남편이 하는 일을 따랐을 뿐인데 이렇게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네."
9년 전 신부전증을 앓던 김정연(41)씨에게 한쪽 신장을 기증한 오차순(56)씨는 이식 후 처음 만난 김씨의 손을 꼭 붙잡고선 등을 토닥거렸다. 사는 게 바빠서 연락 한번 못했다며 어렵게 입을 뗀 김씨의 눈시울이 금새 빨개졌다. 오씨의 남편 정덕수(57)씨는 "내 신장을 기증받은 분도 정연씨처럼 건강히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20일 서울 태평로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의 한 레스토랑. 정씨 부부처럼 남편과 부인 모두 신장기증을 한 11쌍의 부부와 이식 수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년에 첫 만남이 있었지만 올해는 이식 수혜자들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 그것도 부부가 모두 장기기증을 실천한 사례는 지금까지 15쌍이 전부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오던 오씨가 신장 이식을 결정한 데에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정씨는 1999년 신문에서 우연히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고 신장을 기증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수년째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고심하다 결단을 내렸죠."
가족이 반대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씨와 자식들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오씨는 평소에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했던 남편의 몸에 칼을 대는 게 처음엔 꺼려졌지만 남편이 감내하는 잠깐의 고통으로 평생 아파하며 살아갈 사람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남편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오씨는 수술 이후 몸도 마음도 더욱 건강해진 남편을 보고 자신도 장기기증을 고민했다. "남편 덕에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괜히 그 사람들에게 빚진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결국 2002년 오씨 역시 남편을 따라 신장 기증을 위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엄마 손길이 필요한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눈에 밟혔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줬다. 부모의 선행을 보고 자란 덕인지 정씨 부부의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까지 모두 장기기증 등록을 했다.
오씨에게 장기를 기증 받은 김씨는 "저도 두 분 때문에 건강도 찾고 꿈도 찾았으니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싶어요"라고 활짝 웃었다.
송옥진 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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