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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급 4명, 1999년 北에 피랍"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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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급 4명, 1999년 北에 피랍" 파문

입력
2011.05.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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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관계자 "숫자·계급 사실과 달라" 비공식 흑색 요원이었을 가능성도軍 "정보사항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 입장 고수정부, 향후 첩보활동·대중 외교 고려 감췄을 수도

1999년 현역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전직 북한전문기자의 증언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누가 왜 어디에서 어떤 경위로 납치됐는지, 정부는 왜 이를 10여년 이상 감춰 왔는지 등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

납치 의혹 사실인가

지난 19일 서울고법 형사2부 심리로 열린 '흑금성' 박채서씨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런 취지의 증언을 한 전직 북한전문기자 정모씨는 2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남북경협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그 부분 진술을 위해 법정에 증인으로 섰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정씨의 진술을 유도한 박씨의 변호인 측은 "아무런 입장도 밝힐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박채서씨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안부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은 적 없다"며 "설령 수사 과정에서 (장교 납북 이야기가) 나왔더라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직접적인 공소사실과도 관련 없어 (검찰에겐) 의미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씨가 1심에서 중형을 받아 어떻게든 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술 아니겠느냐"며 "사실이라 해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으니까 항소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이날 "정보사항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군 관계자 피랍 여부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 역시 합참 소속 정모 중령이 납치됐다는 주장에 대해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해당 (전직) 기자의 증언처럼 납치된 사람이 4명이라는 숫자 부분과, 계급이 대령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즉 나머지 증언은 우회적으로 시인하는 듯한 대목이다. 또한 북한 전문가는 "이미 해당 관계자가 풀려났다는 정보를 접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합동참모본부 소속 군 관계자 중 공식적으로 중국에 머무르며 대북첩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주재 영관급 무관(육군 대령)은 지난해 기준 6명이다. 당초 5명이었다가 천안함 사태 이후 6명으로 증원됐다. 하지만 당국이 사건을 감춰온 점에 비춰볼 때, 피랍된 관계자가 비공식 흑색(비합법) 요원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북첩보 업무에 투입되는 정보요원들은 주로 중국과 북한에서 북한의 정보요원, 경제인과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재중동포 등을 포섭하며 정보를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와 신분에 따라 군, 정보기관으로부터 신분보호와 보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존재가 드러날 경우 생사의 기로에 설 위험도 크다.

정부 왜 숨겼나

문제는 납치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10년 이상 감춰왔다는 것이다.

은폐 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납치된 우리 군 장교가 정보 및 공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납치 사실을 밝히고 인정하면 결국 중국에서의 우리 정보활동을 알려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경우 추후 정보ㆍ첩보활동에도 문제가 생기고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도 큰 마찰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납치 지점으로 알려진 곳은 중국 국경이다. 결국 납치 사실이 공개될 경우 우리 군 기관의 정보활동 반경을 떠벌리는 셈이 돼 불가피하게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기밀에 부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납치 시점으로 알려진 1999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제1연평해전이 발발해 남북관계가 벼랑 끝으로 몰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99년은 동시에 6ㆍ15 남북공동선언(2000년)을 앞둔 시기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납치 사안을 발표할 경우 당시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에 상당한 부담이 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 냉전시대에 외국의 정보원을 납치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었는데, 의혹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1990년대 말까지도 이런 과거의 행태를 계속해왔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남북이 해당 사안을 비공개적으로 다루면서 남북관계를 풀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12년 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이 사실이 남북관계에서 지금 바로 심각한 악영향을 주거나 위기를 조성할 정도의 파장은 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만약 오래 전에 남북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번 사안은 전말이 뒤늦게 드러난 정도의 상황을 넘어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흑금성 사건

박채서씨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대북공작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국정원 지도부가 1998년 3월 '북풍(北風)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른바 '이대성 파일'이라는 비밀공작 문건을 공개해 박씨의 신분이 노출됐고, 박씨는 국정원에서 해고됐다. 박씨는 해고된 후인 2003년 3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공작원으로부터 "남한의 군사정보와 자료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9권의 군사교범 등을 입수해 넘겨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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