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원내대표와 회동 장소 갑자기 바꾸고… 대변인 배석도 거절청와대 시절 밴 습관인 듯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평소 '정보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쓴다. '박 전 대표는 입이 무거운 순서대로 측근들을 신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박 전 대표가 요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더라'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의 일정과 동선은 베일에 꽁꽁 싸여 있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전화를 걸 때도 종종 발신자번호를 숨긴다.
박 전 대표가 20일 황우여 원내대표와 회동하는 과정에서 '007 작전'이 벌어진 것은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 때문이다. 황 원내대표는 약속된 회동 시간 직전에 '회동 장소를 바꾸는 게 좋겠다. 인근의 다른 곳으로 와 달라'는 박 전 대표 측의 연락을 받고 차를 돌렸다고 한다. 정치권엔 황 원내대표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여권 인사는 21일 "박 전 대표 측으로부터 약속 시간 10분쯤 전에 만나는 장소를 바꾸자는 전화가 왔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은 "초선 의원 몇 명과 함께 박 전 대표를 만나기로 한 날 박 전 대표 쪽에서 차를 보내 준 적이 있는데, 행선지도 제대로 모른 채 차를 타고 가 보니 박 전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보안 의식'은 흉흉했던 시절 청와대에서 겪은 경험이 몸에 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자신에게 언론 등의 관심이 지나치게 쏠리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스스로 몸을 숨기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일 박 전 대표의 행동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의 대표대행을 맡고 있는 황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의 발언 내용을 수첩에 일일이 적었다가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당 대변인을 회동에 배석시키겠다'는 황 원내대표의 요청을 박 전 대표 측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 황 원내대표는 회동 장소를 끝까지 공개하지 않는 등 박 전 대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다. 이에 "집권당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의 대변인 또는 참모냐"며 씁쓸해 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박 전 대표는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행태를 비판하며 탈당까지 한 적이 있고, '정당은 권력을 독점한 특정 인물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20일 회동 소동은 박 전 대표가 말하는 '시스템''원칙'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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