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갑 여는 신흥경제국 주민들, 살아나는 글로벌 소비
과거 신흥경제국은 저렴한 임금과 지대 등을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선진국 시장에 공급하는 글로벌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경기부진으로 글로벌 소비기반 위축이 우려되면서, 그동안의 고속 성장으로 소득수준이 향상된 신흥경제국의 소비확대 가능성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흥경제국의 소비는 인구 및 경제규모에 비춰 아직까지 크게 작은 수준이다. 2009년 현재 신흥경제국은 세계 인구의 86%,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7%를 차지하고 있으나 소비 비중은 이보다 낮은 43%에 머무른다. 이들 국가가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면서 전반적 소득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가계가 높아진 소득으로 소비보다는 저축을 늘렸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해 예비 자금을 많이 비축해야 하는 데다, 주위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 및 서비스 유통시장이 부족한 실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 국가의 소비는 식품 및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고 소비계층이 저연령, 저소득층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전체 소비 중 식품 비중이 30%를 훌쩍 넘어 선진국의 두 배를 웃돈다. 브릭스(BRICs)의 경우 1인당 연소득 2,500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이 전체 인구의 71%에 달할 정도다.
그렇다면 신흥경제국의 소비는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까. 소비의 주요 결정요인인 ▦소득수준 ▦중산층인구 규모 ▦소비자금융 등의 움직임에 비추어 볼 때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 보인다.
우선 2000년대 이후 신흥경제국이 선진국보다 빠른 성장을 지속하면서 소득이 크게 증가했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6년간 신흥경제국의 1인당 소득증가율이 연평균 6.7%로 선진국(3.4%)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더욱이 신흥경제국은 선진국에 비해 인구가 훨씬 많아 경제 전체의 구매력(명목GDP 기준)이 2013년께 선진국을 추월하고, 특히 중국과 인도의 구매력은 각각 미국(2016년)과 일본(2012년)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경제전반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이들 국가의 중산층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브릭스의 중산층 이상 인구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나 2010년말 현재 미국, 일본 등 주요 7개 선진국 중산층 인구(7억명)보다 많은 8억명으로 추산되며 2020년에는 16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고가의 자동차 및 IT 제품 소비를 늘리기 시작하는 중산층의 확대는 소비의 빠른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신흥경제국에서 할부금융 및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고가 소비재 구입을 저해하던 유동성 제약도 완화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소비자 대출이 최근 4년간 세 배 넘게 늘었으며 자동차구입 대출은 2001년 이후 연평균 29% 증가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미국에서는 소비자 신용카드 사용액이 줄어든 반면 중국, 브라질 등에서는 높은 증가세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금융의 발전은 소비 가용자금을 확대함은 물론 저축유인을 낮추고 소비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거대한 신흥경제국 소비의 성장 잠재력은 이미 서서히 발현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신흥경제국의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9.9%로 선진국(4.8%)의 두 배에 달하여 글로벌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6%포인트나 확대되었다. 아직은 선진국보다 그 규모는 훨씬 작지만 신흥경제국의 소비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경우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선진국의 자동차, IT 제품 등 내구소비재 시장이 성숙단계에 이른 상황에서 신흥경제국의 소비 확대는 이들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 글로벌 소비 증가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들 국가의 소비증대로 선진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빠르게 늘어날 경우 선진국의 경상수지 적자, 신흥경제국의 경상수지 흑자 심화라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 완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신흥경제국 소비에서 차지하는 식품 및 에너지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들 국제 곡물시장과 원자재 시장에서 이들 품목의 가격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이홍직 한국은행 국제경제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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