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광야교회 예배당. 최기준(47)씨는 신부 손종순(41)씨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만 방심하면 마치 행복이 연기처럼 사라질까 두려운 듯. “이 사람 덕에 제 삶이 바뀌었어요. 너무 고맙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노숙인 출신인 둘은 이날 결혼식을 갖고 인생의 새 시작을 알렸다. 100여 명의 노숙인 동료, 가족 등은 축복하는 박수와 환호성을 선물했다.
최씨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영등포 인근에서 노숙을 하거나 쪽방촌을 전전했다. 22년간 일했던 회사(피혁공장)로부터 구조조정을 당한 후 이혼에 알코올중독까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시간은 너무도 빨랐다.
그런 그에게 손씨가 희망으로 다가왔다. 사랑의 힘이었다.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음의 상처를 안고, 교통사고로 팔을 크게 다쳐 다니던 미싱(재봉틀) 일도 그만둔 손씨도 2000년대 초반 노숙인이 됐다. “어딘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는 어느 쪽방촌에서 만난 둘은 지난해 초부터 사랑을 싹 틔웠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아주다 보니 그렇게 됐나 봐요.”
사랑이 찾아오자 무엇보다 최씨가 바뀌었다. 알코올 금단 현상과 싸우며 정부 지원의 자활근로를 시작했다. 동료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일하고 받은 40만원을 차곡차곡 모았고, 올 초 조그마한 월셋방을 얻어 거리생활을 정리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최씨는 지난해 말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2달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결혼계획에 들뜬 손씨에게 면목이 없었다. 손씨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몇 개월을 살더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요.”
결혼식 내내 손씨는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은 몸 상태의 신랑이 흘리는 땀을 닦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혼여행은 강화도로 간다. 손씨는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바로 받아야 한다는데 남편이 고집을 부려서요. 저를 위해서라는데, 고맙죠”라고 했다.
이날 결혼식에는 최씨 부부 외에도 3쌍의 노숙인 부부가 새로 탄생했다. 결혼식 비용은 노숙인쉼터 광야홈리스센터 등이 마련했고, 하객으로 온 노숙인들은 1만원 가량의 쌈짓돈을 내놓았다. 60대의 하객 노숙인은 “장애를 극복한 것을 보고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사랑이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이정현기자 joh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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