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9일 사퇴하면서 차기 총재를 둘러싼 유럽연합(EU)과 신흥국들 간 물밑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아직까지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인사는 없으나 EU와 신흥국 진영은 각각 세 불리기를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 신흥국의 움직임이 좀 더 적극적이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18일 "IMF 총재는 국적이 아니라 능력을 보고 선출해야 한다"며 유럽에서 총재를 배출해 오던 관행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IMF 고위층에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대표성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흥국의 공세가 거세지자 EU도 수성에 나섰다. 피아 아렌킬데 한센 EU 집행위원회 수석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IMF 최대 출연자로서 EU 회원국들이 능력 있는 후보에 합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EU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27개 회원국들의 행동 통일을 촉구한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도 "IMF 총재는 누가 되든 간에 유럽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 등이 보도했다.
현재로선 라가르드 장관이 가장 유력한 후임자로 점쳐진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독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 "EU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라가르드 장관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 역시 "라가르드 장관은 영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편 스트로스 칸은 이날 IMF 총재직까지 내놓고 결백을 증명하겠다고 했으나 성폭행 혐의와 연관된 체액이 발견되는 등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 abc방송은 "뉴욕 경찰이 스트로스 칸이 투숙했던 소피텔 호텔 방 카펫에 남아 있는 체액을 발견해 DNA를 분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체액은 피해자인 32세 흑인 여성이 뱉어낸 침에 섞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스트로스 칸의 1회용 콘택트렌즈와 이쑤시개, 혈액이 묻어 있는 1회용 반창고 등을 증거물로 수거했다. 경찰은 스트로스 칸의 체액 등 증거물들이 피해 여성이 주장하는 성폭행 상황에 부합하는 지를 가리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AFP통신은 스트로스 칸 변호인단이 다시 보석을 신청함에 따라 19일(현지시간) 오후 뉴욕 맨해튼 최고법원에서 보석 심사가 진행된다고 보도했다. 변호인단은 전자 감시장치를 부착하고 24시간 가택 연금 상태에 있겠으며 100만달러 이상의 보석금을 거는 조건으로 스트로스 칸의 보석을 다시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나 피해 여성이 통상 객실 청소 업무를 할 때처럼 호텔 방문을 닫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스트로스 칸 측 변호의 설득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성폭행 사건은 목격자가 없어 물증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며 설령 물증이 있더라도 스트로스 칸 정도의 재력이면 통상 합의에 따른 성관계인 성매수를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 재판결과는 지켜 봐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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