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또 참았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앞장 서 정부의 잇따른'기업 때리기'에 대해 입 바른 소리를 할 것이라는 재계 일각의 기대감은 결국 현실화하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허창수 회장 취임 이후 두 번째 회장단 회의를 진행했다. 당초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초과이익공유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정부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았다"는 공감대가 재계에 형성돼 있었고, 대기업의 대변인 격인 전경련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감이 고조되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지난 16일 "대기업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재계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이날 회의에 재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회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전경련은 발표문에서"회장단은 지난 5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경제5단체장과의 회의가 정부와 경제계간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기업이 잘 되게 하는 기본원칙을 지켜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전해 듣고 회장단은 감사와 지지를 표명하고, 주요 현안인 물가안정과 투자확대를 통해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시장과 기업현실에 맞는 동반성장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등 이익공유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볼 수 있는 문구 몇 개 정도가 눈에 띄었을 뿐 대부분의 내용은 전형적인 '화합형'이었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기자회견 발언도 철저히'친정부'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회의에서 이익공유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등 내용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한 뒤 "개인적으로 국민연금의 주주는 국민인 만큼 국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주주권을 행사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연기금 주주권 행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구체적 내용이 결정되면 그 때 얘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초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기업 프렌들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전경련도 기업인들의 모임이고, 개별 기업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전경련 차원에서 정부에 정면으로 대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전경련이 재계를 대표해 쓴 소리를 한 마디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허 회장과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박용현 두산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강덕수 STX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류진 풍산 회장이 참석했다. 4대 그룹 회장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회장은 모두 불참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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