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3세와 유명인사를 끌어들여 주식 시세조종을 일삼고 거액을 챙겼던 희대의 주가조작 사범이 형집행정지 기간을 틈타 도주, 3개월째 행방불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검찰에 따르면 증권거래법 위반 등 7가지 혐의가 확정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조모(32)씨가 지난 2월 중순 검찰의 형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풀려난 후 도주했다.
조씨는 당시 "외조모상에 참석하게 해달라"는 형집행정지 신청을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검찰의 석방 결정에 따라 5일 동안 자유의 몸이 된 조씨는 상가가 있던 삼성서울병원에 들렀다가 곧바로 잠적해 버렸다. 뒤늦게 조씨의 도주 사실을 안 검찰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총무부 산하에 검거반을 편성해 조씨를 추적하고 있다.
조씨는 2006년 9월 자신이 실질적 사주인 코스닥 상장사의 바지사장으로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의 아들 박중원씨를 영입, 박씨가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허위공시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5월 징역7년형이 확정됐다.
20대 나이에 고졸 출신으로 수입차 판매사원 경력밖에 없던 조씨가 주가조작을 기획한 것으로 밝혀지자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조씨는 재벌가 자제 외에 전직 국무총리의 아들, 서울시테니스협회장 등 다른 유명인사들도 주가조작에 가담시켜 화려한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조씨의 도주 사실이 알려지자 형집행정지 결정 배경에 의문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부친상이나 모친상이 아니라 외조모상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감자가 부친이나 모친, 장인 및 장모상을 당할 경우에는 검찰이 거의 예외없이 형집행정지 결정을 내리지만 나머지 경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가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직계존비속이 상을 당하면 가능하면 허락해주는 것이 관례여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가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점을 감안한 것"이라며 "형집행정지 결정 과정에서 다른 외압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말했다.
형집행정지 기간에는 수감자를 추적관리하지 않는 등 차제에 허술한 관리체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는 수감자의 형집행정지시 가족이나 변호인을 신원보증인으로 세우도록 할 뿐 교도관을 동행하게 하는 등의 조치는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휴가를 간 군인에게 알아서 부대로 돌아오라는 식"이라며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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