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1978년 경북 왜관 미군기지에 고엽제 드럼통 250개 분량(50톤)을 파묻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매립된 고엽제의 처리와 보상을 둘러싸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고엽제 드럼통을 매립했다는 미군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당시 캠프 캐럴에서 근무했던 로버트 트라비스씨는 “드럼통 250개를 하나하나 창고 밖으로 굴려서 옮긴 것으로 기억한다”며 “드럼통에서 내용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역겨우면서도 향긋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냄새가 났다”고 밝혔다. 그는 “드럼통을 옮긴 직후 온몸에 붉은 발진이 생겼고 관절염이 생기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며 “우리는 실험용 쥐로 쓰였다. 유독물질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크래머씨도 “당시 갑자기 발이 마비돼 걸을 수 없게 됐다”며 “30여년이 지났지만 만성적인 관절염 등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당뇨와 신경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힌 당시 중장비 기사 스티브 하우스씨는 “우리는 그들 뒷마당에 고엽제를 묻었다. 그 기억은 나를 여전히 괴롭힌다”고 말했다.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축적되면 5~10년 뒤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은 고엽제를 사용금지 화학무기로 간주하고 베트남 전쟁 이후 사용을 감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후유증이 잇따르자 고엽제후유증 환자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림프암, 육종암, 폐암, 백혈병 등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하고 있다.
1978년 고엽제가 담긴 드럼통을 묻었다면 33년이 지나는 동안 드럼통이 부식돼 내용물이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몰 당시 콘크리트 차수벽 설치 등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 유독물질이 이미 주변 지역을 오염시켰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성명을 내고 “고엽제로 인한 토양오염은 물론 광범위한 지하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캠프 캐럴로부터 불과 630m 떨어진 낙동강까지 직접적으로 오염시켰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미군도 사실여부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미군 측은 19일 환경부의 요청에 대해 당장 해당 기록은 찾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한 미8군 사령부는 “기록 확인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조치가 있는지 검토 중”이라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밝혔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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