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장래에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랍니까?’ 이 질문에 많은 한국 엄마들이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같은 답변을 한 일본이나 중국 태국 엄마들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자녀의 개인 능력을 유달리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교육문화기업 ‘베네세 코퍼레이션’의 베네세 차세대 육성 연구소가 지난해 2~4월 만 6세 이하 미취학 자녀를 둔 동아시아 4개국 주요 5개 도시(서울과 도쿄 베이징 상하이 타이페이) 부모 6,245명을 대상으로 한 육아관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한국은 자녀의 능력, 일본은 역할 중시
가장 많은 답변은 5개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관이다. 반면, 다음으로 많이 나온 답변은 나라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 엄마들은 두 번째로 ‘리더십 있는 사람’을, 세 번째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을 꼽았다. 일본 엄마들은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중국 엄마들은 ‘업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을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답했다.
연구소 측은 “자식의 능력이 지닌 가치를 중요시하는 한국 엄마들과 개인적 존재로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역할을 중요시하는 일본 엄마들의 가치관 차이가 표현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 엄마들의 육아 가치관이 다른 나라와 가장 뚜렷이 구별된 항목은 아이가 떼를 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한국 엄마들의 76.0%가 엄하게 꾸짖는 게 좋다고 답했다. 일본(40.3%)과 중국(베이징 8.0%, 상하이 9.9%) 태국(15.7%)의 응답률을 합한 수치보다도 높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옛말이 있듯 엄한 가르침을 중시하는 한국의 보편적 인식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나타난 셈이다.
육아불안 경험 한국이 많아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들을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다 싶다가도 정말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맞나 싶게 힘들 때도 있다. 일본 중국 태국에 비해 한국 엄마들이 이런 긍정ㆍ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나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답한 한국 엄마들은 각각 95.1%와 96.6%로 나타났다. 같은 답변을 한 다른 나라 엄마들보다 좀더 많은 수치다.
그런데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된다’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늘 희생하고 있다’ ‘아이에게 화풀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답변 역시 각각 87.0%, 83.7%, 59.5%로 가장 많았다. 특히 항상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은 도쿄 36.7%, 베이징 43.2%, 상하이 44.2%, 타이페이 54.2%에 비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조사에 참여한 이기숙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엄마들의 개인지향 욕구가 늘면서 자녀와의 상호작용, 교육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며 “많은 엄마들이 열심히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다른 자녀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방식이 최선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육아불안 증세를 경험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마음 복잡한 우리 엄마들
일본과 중국 엄마들은 ‘당신에게 아이는 어떤 존재입니까’란 질문에 모두 ‘생활과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라고 가장 많이 답했다(도쿄 86.7%, 베이징 81.7%, 상하이 79.3%). 반면 한국 엄마들의 답변은 ‘장래의 사회를 이끌 존재’가 60.4%로 제일 많았다. 아이가 장래에 무엇보다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라길 바라는 한국 엄마들의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일본이나 중국처럼 ‘생활과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라고 답한 한국 엄마들 역시 58.8%로 꽤 많았다. 연구소 측은 “아이를 주관적인 시각과 객관적인 시각 모두에서 바라보는 셈”이라며 “아이의 존재 의미에 대한 한국 엄마들의 복합적 심리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또 86.6%의 한국 엄마들은 ‘글자나 숫자는 아이가 관심을 가진 후에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해 아이의 발달 수준에 따른 교육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능한 빨리 가르치는 게 좋다고 답한 비율은 13.4%에 불과해 4개국 중 가장 낮았다. 이 교수는 그러나 “실제 부모들은 유아가 보이는 관심이나 유아 발달을 적기 교육연령보다 보통 더 빠르게 인식하고 있어 유아 발달과 적절한 유아교육에 대해 부모들이 정확히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 취학 전 유아교육, 한국은 '국영수' 日 中은 '예체능'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이미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네세 코퍼레이션의 베네세 차세대 육성 연구소가 6세 이하 자녀를 둔 서울과 도쿄 베이징 상하이 타이페이에 사는 부모 6,245명을 대상으로 한 유아생활 실태 설문조사 결과다.
자녀가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의 교육이 아닌 별도 과외활동으로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에선 한글이 39.4%로 가장 많았고, 영어가 33.6%, 수학이 31.9%로 뒤를 이었다. 반면 도쿄는 수영(20.8%), 베이징과 타이페이는 미술(각각 38.6%와 26.9%)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하이에선 영어회화와 미술이 각각 33.9%로 똑같이 나왔다. 결국 일본 중국 태국 유아들은 예체능 활동이 두드러졌지만, 서울 유아들은 정규교육에 앞선 선행학습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오전 8시 전에 일어나는 유아 비율은 38.4%로 가장 적었다. 도쿄는 85.2%, 베이징은 95.6%, 상하이는 91.8%, 타이페이는 56.5%였다. 취침 시각 역시 서울이 늦은 편이다. 오후 10시 전에 잠든다고 답한 비율이 도쿄는 79.1%, 베이징은 69.6%, 상하이는 80.5%에 달했지만, 서울과 타이페이는 각각 42.0%, 33.5%에 그쳤다. 한국 유아의 생활패턴은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올빼미형, 중국 유아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아침형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셈이다.
낮잠을 포함한 총 수면시간도 도시마다 달랐다. 도쿄와 서울 유아들이 각각 평균 10시간 33분, 10시간 36분 자는 반면 상하이 유아들은 11시간 31분 잔다. 1시간 가량이나 차이가 난다.
임소형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