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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관예우와 정백허심(精白虛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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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관예우와 정백허심(精白虛心)

입력
2011.05.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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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변호사법이 17일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에 따르면 판ㆍ검사와 군법무관, 그 밖의 공무원으로 재직한 변호사는 공직을 그만두기 전 1년간 근무한 국가기관이 처리한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전관예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판사나 검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맡은 사건에 대해서 법원과 검찰에서 유리하게 판결하는 법조계의 관행적 특혜'라고 기술되어 있다.

세종대왕의 간곡한 당부

법조계에서는 실제로는 전관예우 관행은 없으며, 있더라도 절차적인 면에서 약간의 편의를 줄 뿐 판결 내용을 바꾸어 예우하는 관행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여전히 '유전무죄ㆍ무전유죄'의 전관예우 관행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 있다. 전관예우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불공정행위로 지목되어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사법부 불신의 큰 요인이 되었다. 개정 변호사법의 시행으로 없어지기를 기대하지만, 전관예우를 큰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 법조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사건수임 규제만으로는 근본적으로 고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글 창제 등 다방면에 큰 업적을 남긴 세종은 재판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바쁜 국사 중에도 중요사건의 재판기록을 친히 보고, 잘못된 판결을 가려내어 시정을 명한 일도 여러 차례다. 즉위 13년에 재판을 담당하는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교지를 내렸는데, 그 중에 '정백허심(精白虛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재판관은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치밀하고 밝게'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되, 그 과정에서 '마음을 비워 사심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재판에 임함으로써 '죽은 자의 원성이 하늘에 다다름이 없도록 하고, 산 자의 원한도 털끝만큼도 없도록 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세종이 당부한 재판관의 마음가짐은 서양 신화와도 통한다. 디케(Dik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나 원칙과 질서의 가치를 수호하며 인간세상의 분쟁을 판결하는 신이었다.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불리면서 정의(justice)의 어원이 되었다. 흔히 정의의 여신상으로 불리는 디케의 동상은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재판에서 사건 관련자의 지위 신분 개인적 연고 등에 연연하지 않고, 잘잘못을 치밀하게 저울질하여, 엄정하게 심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판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재판관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다산 정약용이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는 형전6조 청송편에서 '소송에서 판결의 근본은 성의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신독에 있다(聽訟之本 在於誠意 誠意之本 在於愼獨)'고 말했다. '신독'은 과 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행동을 삼가고, 양심이 부끄럽지 않게 주의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공직자 처신 정갈해야

결국 올바른 판결은 재판관의 신독, 즉 스스로 마음가짐을 정갈히 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재판관뿐만 아니라 공직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새겨들을 가르침이다. 이번 변호사법 개정을 계기로 법조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는 전관예우 관행이 사라져 이 땅에 정의가 가득하길 기원한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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