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어제 사임했다. 성폭행 혐의로 뉴욕 경찰에 체포된 지 나흘 만이다. 사건의 선정성을 높이려는 과장된 칭호이긴 하지만 '세계 경제대통령'이 수갑을 찬 채 잡범 대기실에 웅크리고 앉은 꼴을 보였으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애초 무죄추정원칙 등의 옹호를 받는 듯하다가 오입쟁이 평판과 성범죄 전력이 알려지면서 대세가 기울었다. 그런데 그의 사임에 앞서 후임 총재 자리다툼이 제법 요란한 모습에서 새삼 이런저런 음모설이 크게 들린다.
■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은 스트로스칸이 계략(Set-up)에 걸려 든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막연한 추정이지만, 대통령 자리 도전을 겁낸 우파 사르코지 대통령 쪽에서 함정을 팠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르코지 쪽에서 "터무니 없다"고 극구 부정한 것을 보면, 프랑스 정치상황에서는 오히려 그리 추리할 만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프랑스 언론이 선정적 보도를 자제하는 것은 사회가 원래 '배꼽 아래'에 너그럽고, 언론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 제재가 엄한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뭔가 '불순한 의도'가 개입했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 이럴 때는 당사자보다는 주변의 시각이 도움된다. 영국과 독일 언론은 사르코지 쪽의 계략을 의심하는 음모설에는 별로 관심 없는 듯하다. 그보다 미국 사법당국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센세이셔널하게 다뤘다고 의심한다. 미국 언론이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 또는 성범죄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뉴욕 경찰이 저명한 외국 인사의 수갑 찬 초라한 모습을 굳이 공개, 언론이 마음껏 촬영하도록 허용한 것은 통상적 관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러 치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논평이 그럴 듯하다.
■ 이런 시각은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스트로스칸의 사임을 공개 요구한 것에 주목한다. 또 프랑스가 IMF의 국제 경제정책뿐 아니라 아프간 전쟁과 리비아 개입 등에서 유럽의'반미'에 앞장 선 사실을 지적했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평소 괘씸하게 여기던 프랑스와 유럽에 본때를 보이는 기회로 이용한 것으로 볼 만하다는 얘기다. 이런 풀이는 IMF 총재 자리를 놓고 유럽과 아시아 등 신흥국의 다툼이 제법 치열한 상황과 언뜻 어울린다. 반면 미국이 그래도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을 지원할 것이란 예상과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홀로 돌아서서 웃는 것은 미국이 아닐까.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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