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국민채소인 배추 가격이 최근 반 년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작년 9월말 포기 당 1만원을 넘나들던 배추값은 최근 20분의1 수준인 600원대로 주저 앉았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와 당장의 가격만 보고 재배여부를 결정하는 근시안적 재배관행이 합쳐진 결과다.
정부는 그래서 매번 채소값 파동 때마다 장기적으로 '농업관측' 능력을 높이겠다고 공언해 왔다. 당장 수입량을 늘리는 식의 단기대응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농산물 작황을 예측하고 그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는 구조 개선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물가와 농업을 책임진 기획재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업무계획에도 이를 중점 추진업무로 올려놨다. 기상변화 등에 따른 시나리오별 시세예측모형을 개발ㆍ활용하겠다는 것. 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19일 관련기관 등에 따르면 채소 작황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날씨. 당연히 신뢰할 만한 기상관측이 중요하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현재 기상청으로부터 단기(일주일), 월간, 계절 예보 등 자료를 받아 분석ㆍ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 예보는 정확도가 70~80% 내외로 그나마 높지만 다른 중장기 예보는 '강수량이 예년과 비슷하겠다', '태풍이 1~2개 지나가겠다'는 수준. 장기예보는 아예 개괄적 분석에 그쳐 특정 지역의 날씨를 예측하는 건 꿈도 못꾸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하까지 3개월이 걸리는 배추를 포함해 최소 한 달 이상은 재배해야 하는 채소 작황 예측은 거의 불가능한 형편. 한석호 농업관측센터 팀장은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일주일이 예측 한계"라며 "시나리오를 세우려면 기후 전망이 중요한 데 기온, 강수량, 일조시간 등의 예측 값이 불확실하니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점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날씨 예측 못지 않게 중요한 작물 생육 연구도 비슷한 처지다. 기온, 일조시간, 강우량 등 기상 요인 변화에 따라 농작물 생육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선행 연구가 국내에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벼를 연구하는 이충근 식량과학원 박사는 "기온이 섭씨 1도 올라가면 수확량이 얼마나 증감하는 지 등의 세밀한 연구가 국내엔 없다"고 전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물모형 연구 수요도 늘고 있지만, 연구 인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오랜 기간 경험과 경력이 필요한 분야라 지금 시작해도 늦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최근 농업관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선진국처럼 인공위성(아리랑 2호)을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위성 사진을 분석해 작물별 재배면적 조사에 활용하자는 것. 하지만 이 역시 어렵다. 다른 부처도 아리랑 2호 사용을 희망하는 만큼 원하는 시기에 촬영이 어렵고, 사진을 분석해 수치화하는 작업도 인력부족 등으로 손쉽게 처리하기 힘들다. 때문에 정부는 일단 조사대상을 벼로만 좁혀놓은 상태다. 농산물 재배면적으로 조사하는 통계청 관계자는 "사진 해상도가 낮아 무, 배추 등 채소 판별은 어렵고 밭과 논을 분별할 정도여서 채소 관련 연구에는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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